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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능력자들은 정말 있을까?, 거짓말로 밝혀진 초능력자들 - 2부
    기묘한 이야기 2019. 8. 31. 16:00

    <살아생전과 사후, 그가 표방하던 기이함처럼 갖가지 이야기들이 그를 '괴승 라스푸틴'으로 만들었다>

     

    가장 기이한 이미지의 초능력자로 전해지는 '괴승 라스푸틴'

    후에 괴승으로 불리게 되는 라스푸틴은 1869년 1월 22일 시베리아의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태어난 연도에 대해 몇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최근 문서를 통해 알려진 69년으로 기재합니다)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은 술과 도박에 중독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자신도

    18살 때까지 방탕한 생활을 하다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엔 간음과 도적질을 일삼았다고 하지만 진위가 불투명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길에서 어느 수도승과의 만남으로 말미암아 방탕한 생활을 멈추고

    고행을 내세운 홀리스트 종파를 따르는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지만, 홀리스트를

    전면부정하며 인간이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오랫동안의 방탕 뒤에

    느끼는 성적소진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이론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수도승이 되는 것을 포기한 체 고향으로 돌아와 한 호텔의

    급사로 일하다 같은 곳에서 일하던 프라스코비아라는 여자와 결혼합니다.

     

    결혼생활로 아들과 두 딸을 둔 라스푸틴은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며, 그러면서도 성자 행세를 하는 그를 조롱하는 주변인들의

    시선에 신에게 다가서는 가장 가까운 방법을 안다고 평가한

    스스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가정을 팽개친 체 출가를 하게 됩니다.

    (여기엔 어릴 적부터 방탕한 생활을 일삼던 그가 가정에 속박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 출가를 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후 그는 수도승 행세를 하며 기도와 점을 봐주는 것으로

    헌금을 받으며 지속적인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러시아풍의 상의 '루바슈카'에 디스코 풍의 팬츠를 조합하는 등

    자신의 이미지를 기이하게 포장한 라스푸틴의 여느 성직자들과는

    다르게 당당한 언변과 그가 내세운 기이한 이론들, 정숙함을 중요하게

    여기던 당시의 여인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열정적으로 대한 점들이

    그의 유명세를 날이 갈수록 키워주게 됩니다.

     

    <라스푸틴의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사진의 추종자들과 같이 많은 수의 신봉자를 낳는데 큰 일조를 한다>

     

    늘어나는 유명세에 그는 40대에 마침내 귀족사회로 진출하게 되었고, 다른

    수도사들과는 다르게 아주 단순한 말들로 당시 고행과 신성을 중요시하던

    러시아 종교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인 죄를 짓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다는

    식의 자신만의 이론들을 내세우며 특히 사교계의 여성들에게 큰 호감을 받게 됩니다.

     

    이윽고 유부녀를 포함한 많은 수의 사교계 여성들이 성자의 유혹을

    거절할 이유가 없으며 그의 손길이 닿으면 거룩해지고 자랑스러워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와 관계를 갖게 됩니다.

     

    라스푸틴의 마력은 더 나아가 그가 관계를 갖은 유부녀의

    남편들마저 이를 축복이라고 생각하기에 만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그는 자신의 신봉자이자 알렉산드라 황후의

    유일한 친구였던 안나 비루보바의 도움을 받아 황실과 친분을 쌓게 됩니다.

    (일화로, 안나 비루보바는 황후에게 인상 깊은 첫 만남을 위해 밤중에 신비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라스푸틴의 계획에 동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스푸틴 사후에 그녀는 심문을 받는 등 고초를 당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라 황후와 공주들, 그리고 알릭세이 황태자>

     

    당시 황후가 끔찍이 생각했던 알릭세이 황태자가(네 명의 공주를 낳았던 알렉산드라 황후는

    간절한 바람끝에 알릭세이 황태자를 얻지만, 알릭세이는 유전병인 혈우병을 앓게 됩니다)

    경미한 사고 때문에 출혈이 있자 라스푸틴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익혔던 의료지식으로

    지혈을 한 후에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신비한 힘으로 병세를 고치겠다고 말합니다.

     

    이후 지혈 덕분에 출혈이 멈추고 안정을 되찾은 알릭세이 황태자 덕분에

    알렉산드라와 남편인 황제는 그때까지 반신반의했던 라스푸틴을

    살아 있는 성자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 많은 의견이 있는데, 라스푸틴이 어떠한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당시 19세기 유럽에선 한창 발전되었던 혈우병의 완화를 위한 지혈법과,

    심리적 안정이 환자의 병세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이 유입되지 않은 러시아로선

    라스푸틴의 지혈에 의한 특유의 당당한 언행으로 말미암은 행운이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알릭세이 황태자는 혈우병 환자의 전형적인 병세를

    계속해서 보이고 이때 마다 지혈과 기도를 하며 알릭세이에게

    따뜻한 말로 안심시키는 라스푸틴이 치료 후마다 엄청난

    금전을 요구한 사실에서 후자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라스푸틴의 기이한 죽음의 진실

    당시 알릭세이 황태자의 혈우병에 대한 걱정으로 신경쇠약에

    시달렸던 알렉산드라 황후와 마찬가지로 황태자를 끔찍이 여겼던

    니콜라이 2세는 예언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포장한 라스푸틴에게

    한없이 의지하며 그의 허수아비가 되기에 이릅니다.

     

    한편, 라스푸틴은 황제와 황후의 비호 속에 권력을 손에 쥐고 수상과

    내무장관을 임명했다 파면하기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민중들에게 90% 이상의 세율을 매겨 반대시위를 하던 민중에게는

    총탄을 퍼붓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황제가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하느라 자리를 비웠을 때의 폭정은 전무후무한 수준이어서

    민중과 친황제파의 귀족들마저 황제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엔 황실은 신성시 될 만큼 커다란 의미를 부여받고 있었는데도

    라스푸틴과 황후 간에 어떠한 부적절한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민중의 분노가 얼마나 컸을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당시 라스푸틴 스스로 황후와의 성적행위를 술집에서 모사했다는 등 이러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이는 라스푸틴의 주정에 의한 추태와 그와 황실을 향한 민중의 분노가

    만들어낸 헛소문이었으며 두 부부는 평생 서로 끔찍이 대했다고 합니다)

     

     

    <라스푸틴과 황실에 대한 불만을 볼 수 있는 당시 러시아에서 제작된 카툰,

    특히 우측의 황후를 성 노리개 취급하는 듯한 라스푸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편 예전부터 라스푸틴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황제의 딸들, 특히 장녀인

    올가 로마노바는 라스푸틴을 죽여야 러시아에 평화가 있을 거라 주장했지만

    황후의 라스푸틴 지지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족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과 황제의 사촌인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두마의 의원인 푸리쉬케비치가 라스푸틴의 횡포로

    러시아에 반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그를 처치하기로 계획해

    펠릭스 유수포프의 저택에 잔치를 빌미로 초대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이들은 라스푸틴의 반대세력이었으며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라스푸틴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하는 펠릭스 유수포프에게,

    확실하게 화해하기 위해 이를 순순히 믿고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여기엔 펠릭스 유수포프의 아내인 공주 이리나를 평소 흠모하던 라스푸틴이

    이리나가 잔치 후에 자신을 기다리겠다는 말로 꾸민 이들에게 속아서

    살해되었다는 말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며, 펠릭스 유수포프는 라스푸틴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척하며 이리나를 잠시 다른 곳에 보내고 반대세력만 있던

    자신의 집에서 그를 살해한 후 암살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이러한 말을 꾸민 것입니다.

     

    여하튼 라스푸틴의 죽음과 관련해 기이하게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그의

    명성을 더했는데, 청산가리를 탄 술을 마시고도 춤을 추며 흥겹게 노는

    라스푸틴에게 총을 쏘아도 죽지 않아 폭행 뒤 네바강에 버렸는데

    이후 사인이 익사로 밝혀졌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라스푸틴은 단순히 기이한 행동을 하는 수도승이 아니라,

    (사실 라스푸틴은 수도승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정말 어떤 신비한 능력을 지녔던 '초능력자' 가 아니었을까요?

     

    <라스푸틴의 생전부터 사후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도승이 아니었음에도 '괴승'으로 불리게 된다>

     

    사실 이는 계속해서 부풀려진 라스푸틴에 대한 전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라스푸틴이 죽었을 때 그가 청산으로 독살되었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사실은 펠릭스에게 청산가리가 든 가루를 주기로 했던 자가 사람을 죽인다는

    죄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다른 가루를 주었고, 펠릭스는 이를 모르고

    자신이 탄 독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라스푸틴에게 회전식 연발권총을 쏘았다고 합니다.

    (독극물 이야기 자체가 지어낸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 후 라스푸틴을 드미트리의 차로 옮기려던 중 그가 아직 죽지 않고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보고 강철 지팡이로 마구 폭행한 후 양탄자에 싸서 얼어붙은

    네바강 물에 빠뜨렸으며 후에 사인으로 당연히 익사로 판명된 것이

    '청산가리가 든 술을 먹고 춤을 추며, 총에 맞고도 멀쩡해 강에 빠뜨렸더니

    사인이 익사로 드러났더라'라는 부풀려진 이야기의 진실입니다.

    (소련붕괴 이후 있었던 러시아 법의학국 의사들이 실시한 재검증에 의하면,

    사인은 익사가 아니라 총상이 치명적이었으며 독극물 또한 검출되지 않았다고 함)

     

    후에 라스푸틴이 황제에게 자신이 곧 죽을 것이며 만약 농민들에게

    자신이 살해 된다면 두려워 할 것 없이 수백년 동안 러시아를

    통치할 것이지만, 귀족들에게 살해된다면 그들은 러시아를 떠나

    25년간 러시아에 귀족이 없으것이며 황족이 자신을 죽인다면

    황족들 모두 2년 후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족의 손에 죽은 라스푸틴은 편지의 내용처럼 러시아 황가가 무너지고

    지하실에서 총살당하는 비극을 당해 그의 신통력을 높여주는 계기가 됩니다.

     

    <라스푸틴의 친필>

     

    과연 어려서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느라 문맹이었던 그가 정말로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지, 보냈더라도 편지의 내용은 자신의

    적대 세력이 많아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안 라스푸틴이,

    적대 세력의 대표격인 황족 펠릭스 유수포프의 위협으로부터

    황제에게 구원의 손길을(혹은, 자신을 죽이면 황실이 몰락할

    것이라는 자신의 신비한 존재를 이용한 과감한 협박일지도)

    바라는 내용을 은연중 밝힌 것이 아닐까요?

     

    <라스푸틴의 시신>

     

    여기에 라스푸틴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스푸틴이 당시 많은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지닌 비정상적인 성기의 특징 때문인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와 관계를 맺은 여성이 오르가슴이 너무 강렬해 기절했다는 이야기 서부터

    그의 용맹은 그가 지닌 유별난 크기의 성기에 전략적으로 생긴 대형

    사마귀 덕분이라는 말까지 라스푸틴의 성기와 관련해 많은 이슈가 그의 사후에 생산되었습니다.

     

    몇몇에 따르면 라스푸틴 살해 당시 러시아의 어두운 상황을 초래했던

    그의 심볼을 절단해 버린 것을 한 하녀가 발견해 깊숙한 곳에서 보관해오다

    1920년대 파리에서 발견돼 '다산의 상징'으로 숭배됐다고 합니다.

     

    후에 라스푸틴의 딸 마리는 그것을 돌려받아 1977년 캘리포니아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마이클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이 산타 크루즈라는

    이름의 개인 창고 판매점에서 마리 라스푸튼의 개인 소장품 중

    해당 물건을 구매하여 본함(Bonham) 경매장에 경매로 부쳤으나

    경매장 측에서 성기가 아닌 해삼임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2004년엔 러시아 자연과학 재단의 전립선 연구 센터 소장인

    이고르 크냐즈킨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성인물 박물관을

    개장하면서 라스푸틴의 성기라면서 약 30cm 정도 크기의

    성기로 보이는 물체를 전시해 세계적으로 이슈를 만듭니다.

     

    <이고르 크냐즈킨이 라스푸틴의 성기라 주장한 물체, 물론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유물 수집가에게서 $8,000에 구매한 진짜 라스푸틴의 성기라고 주장하는

    이고르 크냐즈킨은, 이것을 봄으로써 남성의 중요성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편, 라스푸틴의 살해 당시 그의 성기가 정말로 잘렸는지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부검관련 보고서는 스탈린 시대 동안에 사라졌으며

    그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 몇몇 전문가들 또한 사라져 진위가 불투명해졌습니다. 

    (공식적으론 라스푸틴 암살에 연루된 이들이 성기를 절단했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기인으로 포장했던 라스푸틴,

    그는 죽어서도 이런 기이한 형태로 후세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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