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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레논과 마크 채프먼, 죽음에 대한 진실
    기묘한 이야기 2019. 8. 31. 12:00

    <1980년 12월 8일에 일어난 비극>

     

    1980년 12월 8일 오후 10시 49분 뉴욕 맨해튼의 다코타 아파트 앞,

    오노 요코와 귀가하던 존 레논을 향한 5발의 총성이 세계를 울리게 됩니다.

     

    그렇게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라는 남성에게 피격당해 병원에 실려간

    레논은 도착순간 이미 사망상태(dead on arrival)였다고 합니다.

     

    <당시 반항 없이 순순히 체포된 '머그샷' 속의 마크 채프먼>

     

    '그 살인범은 모든 의미에서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잘 알려진 법정 화가이자 존 레논 살인 공판 장면을 재현한 작품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마릴린 처치는 마크 채프먼에 대한 인상을 위와 같은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마릴린 처치가 법정서 그린, 법률 서류들을 가리기 위해 '호밀밭의 파수꾼' 사본을 들고 있는 마크 채프먼>

     

    초기 법정 출소 기간 동안 26세의 마크 채프먼은 방탄조끼 차림과 함께였으며,

    공판 때 그는 존 레논 피격 당시 들고 있었던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복사본을 손에 꽉 움켜진 체였다고 합니다.

     

    채프먼은 1977년 조지아 주 다카터에서 하와이로 이사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였고,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재판 기간에, 그가 뉴욕으로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살인을 계획했고

    당시 레논이 살고 있던 맨해튼 센트럴파크에 있는 다코타라 불리는

    아파트 건물 바깥에다 범행 지점까지 미리 표시해 두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코다 아파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레논과 요코>

     

    재판 전 낱낱이 밝혀진 그의 비정상적인 삶과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라는

    방향으로 그를 변호하려던 당시 채프먼의 변호사였던 조나단 마크스에 의해

    법정은 채프먼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범행 책임을 회피할 정도로 충분히

    정신이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합니다.

    (대중들에게까지 낱낱이 알려지게 된 채프먼의 비정상적인 삶이 떨친

    악명이 너무 높았던 나머지 그의 변호사 조나단 마크스는 재판의 전 과정을

    대중들에게 비공개로 진행하려 무던히 노렸하지만, 당시 재판을 맡은

    판사였던 데니스 에드워즈 주니어는 그러한 요청을 묵살합니다)

     

    한편 레논의 조문객 무리는 여전히 자신들의 비탄을 표출키 위해

    정기적으로 범죄현장에 모여들었으며 채프먼은 엄청난 지탄의 대상이자

    세상에서 가장 혐오 받는 사람 중 하나가 됩니다.

     

    <뉴욕시는 존 레논이 살해당하던 날 경악에 휩싸였으며, 그의 조문객들은 비통과 분노에 빠지기 시작했다>

     

    형량 선고에서 피고 측 정신과 의사는 채프먼을 '주로 우울증 상태의 지배를

    받는 정신분열증 환자'로 진단했으며, 채프먼이 살인을 저지르기 1년 전

    경비 일을 그만두고 아내 글로리아와 조용히 살기로 결심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피고 측의 정신과 의사는 채프먼에 대한 소견으로, 그가 레논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이 숭배하던 영웅의 생활방식을 명백히 모방하지만

    (그의 아내 역시 레논의 7살 연상이었던 아내 요코 오노처럼, 4살 연상의 일본계 여성이었습니다)

    그 과정 어딘가에서 그의 레논에 대한 존경이 증오로 바뀌고 만 것이라 밝혔습니다.

     

    채프먼은 후에 판사에게 자신이 레논씨를(Mr. Lennon) 확실히 죽이기 위해

    타격력이 높은 할로우 포인트 탄환을 골라 썼다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당시 채프먼의 아내였던 글로리아 히로코>

     

    1981년 6월 말에 시작됐던 공판은, 법정의 안전을 위해 스무 명의 경관을 배치했으며

    법정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금속 탐지기를 거쳐야만 통과가 허용되었습니다.

     

    애초 예정대로 채프먼의 변호사였던 조나단 마크스는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라는 점을

    탄원하는 소송으로 채프먼을 변호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재판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감방서 신으로부터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한 채프먼이, 결국 재판 중 증인석에 서서

    '나는 존 레논을 죽일 작정이었고, 그날 밤 내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그를 죽일

    의도로 총을 쏘러 다가갔습니다'라고 증언하며 사태는 급변하고 맙니다.

     

    그리고 채프먼은 판사에게 '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한 선택이지만,

    자신의 탄원을 바꾸려는(애초 변호사 조나단 마크스의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라는

    탄원의 취지서 무죄를 주장하던 입장서,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흥정하는 쪽으로

    탄원의 취지를 변경하는) 결심은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유죄 인정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채프먼 측은 결국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흥정하는 쪽으로 탄원의 취지를 변경하기에 이른다>

     

    마지막 법정 출소에서 형이 선고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대답에

    그는 샐린저의 책에서 한 구절을 읽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채프먼이 유죄를 인정한 것에 대해 변호사 마크스는 그가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형량을 무효화 하려 했지만, 판사는 이를 기각함과 동시에 최대 형량보다

    5년이 짧은 20년 형을 선고함과 동시에 감옥서의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을 추천하게 됩니다.

     

    <채프먼이 81년부터 수감생활을 하는 뉴욕의 아티카 교도소>

     

    미국의 가석방 제도에 따라 20년간의 형이 종료되는 시점인 2000년부터 2년에 한 번꼴로

    가석방 신청을 했던 채프먼은 가장 최근인 2010년 8월 12일 6번째 도전을 하였지만,

    채프먼의 가석방 신청 때마다 뉴욕주에 반대 의견서를 보내는 레논의 미망인 오노 요코(77)의

    표에 힘입어 제출된 의견서 중 반대 4통, 찬성 2통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재판 중인 채프먼을 그려 에미상을 받았던 법원 화가 마릴린 처치는

    커다란 안경 뒤로 맑지만, 광기에 차 번득이던 눈과 '하느님이 나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흥정하라고 명령했습니다'라고 말하던 무미건조한

    채프먼의 목소리를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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