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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웰 외계인 해부 사건 - 1부기묘한 이야기 2019. 8. 29. 17:11
<2006년 4월 6일, 로스웰 외계인 해부 필름 공개만큼이나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2006년 4월 6일,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게 되는 기사가 공개됩니다.
20세기 최대 미스터리였던 '로스웰 외계인 해부 필름'이 가짜였다는 내용의 기사가 바로 그것인데요,
BBC 월드뉴스와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같은 유수 매체들에 실렸다는 것이 그 실망감을 더 해주게 됩니다.
거기다 자신이 직접 외계인 모형을 제작했으며, 필름에서 부검의로 직접 출연했다고
밝힌 인물이 바로 존 험프리즈여서 이 기사는 번역되어 세계 곳곳의 인터넷 뉴스로 퍼지게 됩니다.
<'알렉산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닥터후' 등에서 특수효과 조각을 담당했던 John Humphreys>
우리에게도 친숙한 영화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 그리고 인기드라마
'닥터후'의 특수효과 조각부분을 전담하던 존 험프리즈는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험프리즈는 불시착한 외계인의 해부장면을 촬영하는 데 필요한 외계인 모형을 제작했고
그 필름에 자신이 부검의로 출연했으며, 외계인 모형은 촬영 직후 폐기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세계 전역에 이 외계인 해부 다큐가 중계되었고 이후에도 VHS, CD, DVD 등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판매되었다>
그렇다면 공개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단숨에 20세기
최대의 미스터리로 자리 잡은 로스웰 외계인 해부 필름이란 무엇일까요?
<1947년 로스웰 사건과 관련, 지역신문에 실린 기사>
로스웰 사건의 진상
1947년 7월 3일 농부 윌리엄 브래즐(William Brazel)은 미국 뉴멕시코주 남동부의
로스웰이라는 도시에서 100km가량 떨어진 목장서 어떤 잔해들을 발견하고는,
보안관인 조지 윌콕스(George Wilcox)와 지역신문사인 로스웰 데일리 레코드에 연락합니다.
보안관 윌콕스는 로스웰 공군에 연락했고, 7월 7일 제스 마셀(Jesse Marcel)
소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브래즐과 함께 목장에 가서 잔해를 거둬 갑니다.
다음날인 7월 8일 공군은 발견된 잔해가 기상 관측용 기구의 일부였다는 보도자료를
내보냈고, 이 보도자료가 여러 언론기관의 기사에 오르며 한동안 이 사건은 잊혔습니다.
<브래즐이 발견한 잔해물을 거둬가며 촬영한 사진들>
한편 로스웰 데일리 레코드 신문사는 7월 9일 자 신문에 브래즐이 발견한
물체는 은박지, 종이, 테이프, 막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사를 내보냅니다.
<영국의 가장 유명한 UFO 연구가 Thimothy Good>
만들어진 사실
위의 내용이 당시 로스웰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고 있다면,
이번엔 영국의 UFO 연구가인 티모시 굳의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전에 사실, 미스터리 마니아들이나 로스웰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래의 내용으로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래 내용이 제법 길어서 간략화하여 작성하였습니다)
1947년 7월 2일 밤 10시경 로스웰 북방의 목장 부근에 거대한 발광체가 빠른 속도로
비행 중 원인불명의 폭발 후 기체의 잔해 일부가 떨어뜨리고는 서쪽의 산악지대를
가까스로 넘어가다 샌어거스틴 평원에 나머지 기체 모두가 추락하는 일이 생겼다.
다음날 이른 아침 양을 보살피기 위해 차를 타고 방목장에 갔다가
축사 근처에서 문제의 잔해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한 목장주인 윌리엄 브래즐은,
다음날 주운 잔해 일부를 가지고 보안관 사무소에 신고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곧이어 항공대 기지에서 군인들이
목장 주위 트럭 2대분의 잔해 모두를 싣고 가버렸다.
미 공군은 이 사건을 처음 발표했을 때는 비행접시를 회수하였다고 했다가
국방성과 상부 기관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비행접시의 회수는 오보이며
그 정체는 단순한 기상 관측용 기구였다고 정정발표를 냅니다.
당시 미국 토양관리국 토목기사이자 예비역 장교인 글레디 바네트는,
7월 3일 막달레나 부근의 축량 작업 때문에 샌어거스틴 평원에
이르렀을 때 순간 번쩍거리는 것이 눈의 띄었습니다.
호기심에 그쪽으로 향한 그의 앞엔 낡은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금속성의 지름이 7-8미터쯤 되는 원반형 비행접시가 있었습니다.
비행접시는 산산조각이 나 있다시피 했으며 안에는 몇 명의 승무원이
엎어져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인간과 비슷했으며 머리는 둥글고
키는 작았으며 머리털이 전혀 없고, 몸체와 비교하면 머리가 유달리 커 보였습니다.
시체들이 입은 옷은 모두 같은 것으로 회색빛의 일체형 옷이었으며
지퍼나 단추, 벨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후에 군인들이 탄 차가 왔고, 그곳으로부터 100미터 이상 떨어질
것을 명령받고 군사기밀이니 일체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당시 로스웰 추락 현장의 사진으로 알려진, 로스웰 UFO 박물관의 기념 전시 '작품'>
1987년 바로 위와 같이 주장한 티모시 굳의 이야기는 전 세계 미스터리
마니아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예전부터 로스웰 지역에서 많이 목격된
비행물체들의 목격담과 당시 잔해물을 주워 신고했던 브래즐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주운 것은 지구 상에 없는 물질이라고 허풍을 늘어
놓은 것들이 티모시 굳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며 '로스웰 사건' 하면
으레 사실로 치부하게 되는 하나의 사실이 만들어집니다.
<로스웰 사건으로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된 티모시 굳>
티모시 굳의 이런 주장은, 후에 그가 극비문서를 밝혀내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후에 그는 자신의 저서 'Above Top Secret'을 통해 인류 최초의 달 착륙 때
아폴로 11호와 관제소에서, 달에 또 다른 우주선들이 있고 그들이 먼저 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통신내용을 당시 VHF 무선수신 장치를 갖춘
미국의 아마추어 무선가들이 엿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아래의 내용은 아폴로 11호의 승무원들이 지구로 귀환 후에 미 해군 함정 위에서
나눈 이들과 CIA 요원들과의 대화내용을 입수했다고 한 그의 주장입니다.
CIA: "거기서 아폴로 11호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암스트롱: "우리는 그런 가능성을 전혀 배제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말 믿을 수 없었어요.말하자면 우리는 쫓겨 난 셈이었지요. 당시 우주기지나 달 도시 같은 것은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요."
CIA: "쫓겨나다니요? "
암스트롱: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경고를 받고 쫓겨난 셈입니다.그들의 우주선은 분명히 그 크기나 기술 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히 뛰어났어요.
정말 엄청나게 컸지요. 겁날 정도로, 아마 그들의 우주기지쯤 되겠지요."
CIA: "그러나 NASA는 아폴로 11호 후에도 다른 우주선을 보내지 않았나요?"
암스트롱: "물론 보냈지요, 당시 우주계획을 중단할 수는 없었으니까.그렇다고 지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갈 수도 없었지요.
그러니 그 후의 우주선들은 단지 달의 흙 몇 숟가락을 얼른 떠서는 곧 돌아오는 식이었지요."
<그의 저서 중 하나인 'Above Top Secret'>
그가 저서를 통해 주장한 이야기들의 진실성이 어떻든 간에, 그는 로스웰 사건의
효과를 톡톡히 보며 UFO 연구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어 총 12권의 저서를 출간하게 됩니다.
<티모시 굳과 함께 로스웰 열풍에 일조하게 되는 Ray Santilli>
로스웰 외계인의 해부장면이 담긴 필름
티모시 굳이 주장한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미 사람들은 로스웰 사건에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영국인 실업가인 레이 산틸리가 로스웰 외계인의 해부장면이 담긴
필름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1995년 5월 5일 영국 UFO 연구협회에 의해
런던 박물관에서 수백 명의 저명인사들 앞에서 시사회를 합니다.
이후 미국 코닥사의 감정을 의뢰한 결과 필름의 제작 시기가 1947년 또는
1967년도인 것으로 보인다는 판명을 받고 이에 힘을 얻어 '산틸리 필름'이라
불리게 되는 로스웰 외계인의 해부장면을 담은 필름이 특별 다큐로 제작되어,
95년 8월 28일 오후 9시, 미국 폭스TV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 생중계됩니다.
<당시 엄청난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이 다큐멘터리는 방영된 후 전 세계적으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논쟁들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타임지는 세계를 놀라게 한 이 필름이 생방송
역사상 케네디 피격 필름 이후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언급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에도 수입되어 갖가지 매체로 방영되었다>
그 후 이 다큐 프로그램은 VHS, CD, DVD 등의 매체로 전 세계
수출되었고 다큐 프로그램 사상 가장 많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영화감독 스필버그와 스타워즈, 에일리언, 쥬라기공원의 특수효과 소품 제작 및
특수 효과팀의 스탠 윈스턴, 그리고 ET의 촬영감독인 앨란 데비오와 같은 당시 전설적인 현역들은
해당 다큐의 인터뷰에서 영상 조작 가능성을 부정하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가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대부분 '산틸리 필름'에 대해 진짜에 무게를 실어주는 발언들을 합니다.
한편, 이 다큐멘터리에 영상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인터뷰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주요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파올로 케이키 코닥사 관계자
로드릭 라이언-군속 카메라맨('비키니 핵실험'을 영상에 담은 군부대의 인지도 있는 카메라맨)
크리스 멜로이-영국 셰필드 대학 임상병리학(법의학 전문)
시리얼 웩트-미국 임상 병리학 대학 전임 총장, 해부학회장(40 만에 가까운 해부)
패트릭 브롱-프랑스 외과 전문의(15년간 7천여 부검)
스필버그와 그의 특수효과팀<95년 8월 28일, 인류는 처음으로 외계인을 보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이 '산틸리 필름'은 정말 로스웰에 불시착했던 외계인의 해부 모습을 담은 것일까요?
많은 전문가에 의해 조작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던 '산틸리 필름',
이야기는 다시 2006년으로 돌아와 험프리즈의 폭탄발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폭탄발언으로 미스터리 마니아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험프리즈>
그의 기사를 끝까지 살펴보면, 험프리즈는 당시 QWERTY FILMS사와 산틸리에게 부탁을 받고
외계인 모형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 사실을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함께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10년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우직하게 비밀을 지켜온 그가 이렇게 깜짝 발언을 한 이유를,
QWERTY FILMS가 레이 산틸리의 이야기를 각색해 영화를 제작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예전에 만들어 주었던 외계인 모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자신이 다시 한 번 만들어 준 외계인 모형으로 QWERTY FILMS사가 'Alien Autopsy'라는
영화를 개봉하게 되면서 더는 과거사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한 험프리즈는, 10년 넘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Alien Autopsy'라는 영화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10년간
비밀을 유지해왔던 험프리즈가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하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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