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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제국의 기괴한 풍습과 문화, 유적들 - 6부(케찰코아틀과 코르테스)기묘한 이야기 2019. 9. 6. 10:00
◆ 코르테스가 오던 날
모두가 아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자신을 따르는 수백명의 병력을 이끌고 아스테카 제국에 도착했을 때, 제국을 다스리는 위대한 황제 몬테수마 2세는 그를 오래 전에 멕시코를 떠난 케찰코아틀의 화신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현인신 코르테스을 찾아가 융숭한 환대를 했지만, 사악한(?) 코르테스는 오히려 황제의 선의를 이용해 그를 구금하고 제국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몬테수마 황제가 코르테스를 케찰코아틀 신으로 착각한 것은 당연했다.
전설에 의하면 케찰코아틀 신은 금발에 하얀 피부를 하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남성이었고, 멕시코 땅을 떠나면서 '세 아카틀의 해' (서기 1519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는데,
공교롭게도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침공한 해가 1519년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중앙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면, 아마 이렇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나도 이렇게 배웠다.
◆ 전부 거짓말이다
이 꾸며낸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미의 역사에 대해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되짚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 첫째, 케찰코아틀은 멕시코 땅을 떠난 적이 없고, 세 아카틀의 해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신화를 완전히 오독한 것이다. 이런 내용의 전설은 없다.
(2) 케찰코아틀은 금발에 하얀 피부를 하고 턱수염을 기른 백인 신이 아니다.
실제로 이 비슷한 주장을 적은 유럽인들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당시 유럽인들은 원주민 구전 설화에 자신들을 끼워맞춰 일종의 구원자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즐겼는데, 피사로와 잉카 제국의 비라코차 신화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기록에 의하면 잉카의 비라코차, 마야의 쿠쿨칸, 아즈텍의 케찰코아틀은 전부 백인 신이었다.
그런데 정작 원주민들의 기록에서 케찰코아틀이 백인 신이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케찰코아틀의 삽화가 실린 고문서는 4종, 보르지아 고문서, 마글리아베치아노 고문서, 텔레리아노 레멘시스 고문서, 보르보니쿠스 고문서인데, 네 권의 책에 실린 네 권의 삽화 전부 다 케찰코아틀을 까무잡잡한 원주민의 피부색을 가진 신으로 묘사한다.
이 '문명을 전수해주고 간 백인 케찰코아틀' 신화는 훗날 제국주의 학자들이 바이킹이 아메리카 대륙에 문명을 전수했다는 얼척없는 소리를 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하였다. 기반 사료가 잘못되면 가설의 신빙성도 낮아진다. 믿지 마시라.
(3) 아즈텍 사람들은 코르테스를 케찰코아틀 신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 케찰코아틀은 누구인가?
케찰코아틀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보자.
흔히 날개달린 뱀(Winged serpent)으로 번역되는 케찰코아틀의 실제 의미는 깃털달린 뱀(Feathered serpernt)에 가깝다. 위 사진이 아즈텍 시대에 만들어진 뱀신 케찰코아틀의 부조인데, 깃털이 달려 있을 뿐 날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날개달린 뱀이나 깃털달린 뱀이나 느낌이 비슷하기도 하고,
또 깃털 달린 뱀이 날개까지 달려 있으면 더욱 근사하니까 근래에는 날개가 달린 드래곤의 이미지로 소모되는 것 같다.
케찰코아틀은 기원이 굉장히 오래된 신이다. 메소아메리카 지역 최초의 문명으로 여겨지는 올멕 시대의 후스틀라우아카 동굴에 이미 날개달린 뱀의 원형이 등장한다.
깃털달린 뱀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테오티우아칸 문명 시기였다.
기원전 100년 경에 세워진 테오티우아칸 유적지에는 깃털달린 뱀 피라미드(Pirámide de la Serpiente Emplumad)가 존재했다. 애초에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이름 자체가 나우아틀어(아즈텍을 포함한 중미 대륙에서 쓰던 주류 언어)로 신들의 도시란 뜻이고, 나우아틀어로 깃털달린 뱀을 번역하면 케찰코아틀이 되니 같은 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케찰코아틀은 이 시기에 독립적인 신이라기보단 물과 비의 신 틀랄록의 아바타 같은 존재였다. 케찰코아틀을 묘사한 초기 부조에는 언제나 틀랄록의 이미지가 따라다니며, 물과 빗방울의 이미지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케찰코아틀이 독립된 신격을 갖추려면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즈텍 제국에서 케찰코아틀의 전성기가 열렸다. 이때 케찰코아틀은 창조신이었고, 에헤카틀의 이명을 지닌 바람의 신이었다. 한때 자신보다 상위 신이였던 틀랄록과 완전히 동급이거나 약간 더 신격이 높았다. 아즈텍 제국에서 케찰코아틀은 틀랄록, 우이칠로포치틀리, 테스카틀리포카와 함께 주신으로 숭배받는 인기있는 신이었다.
아즈텍 신화 속에서 케찰코아틀은 테스카틀리포카의 쌍둥이 형제였으며, 그와 힘을 합쳐 이 세상을 만들었다. 옥수수와 용설란 술 제조법을 인간들에게 전수한 고마운 신이 케찰코아틀이었다. 또 태양신 토나티우의 명에 따라 신들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 신도 케찰코아틀이었다고 한다.
◆ 케찰코아틀은 사람을 잡아먹는 신이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케찰코아틀은 인간 제물을 즐겨 받는 신이었다.
아즈텍 제국에서 케찰코아틀 신에게 바치는 제의는 매년 2월과 4월, 두 번에 걸쳐 정기적으로 열렸는데 주로 어린이 제물이 바쳐졌다. 물론 정기적인 행사가 두 번이라는 것이지 실제로 바쳐진 인간 제물의 숫자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아즈텍인들이 왜 어린이들을 케찰코아틀에게 바쳤는지는 알 수 없다. 먹을 입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비의 신 틀랄록도 비슷한 케이스였다. 테노치티틀란 발굴 과정에서 케찰코아틀-에헤카틀 신전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37구가 어린이의 것이었고 6구가 어른의 것이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케찰코아틀이 아즈텍에서만 인신공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깃털달린 뱀은 기원전부터 16세기까지 약 1200년간 테오티우아칸, 톨텍, 마야, 아즈텍으로부터 인신공양을 받았다. 쿠쿨칸, 케찰코아틀, 쿠쿠마츠, 부르는 이름은 다양했으나 거의 강박에 가까운 잔혹한 인신공희 풍습은 한결같았다.
예를 들어 테오티우아칸 유적지의 깃털달린 뱀 피라미드에선 꽤 광범위한 규모의 인신 공양이 바쳐졌던 것으로 추측되며, 실제로 피라미드 지하에서 174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분석 결과 이들은 대부분 전사 계급의 남성이었으며, 살해되기 직전에는 테오티우아칸에서 생활하였다. 처형 당일에는 저항하지 못하도록 손을 결박당한 채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들은 신전의 완공 기념식에서 희생된 이후 지하에 집단 매장되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케찰코아틀에게 어린이를 바치는 악습은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케찰코아틀은 절대로 자비로운 신이 아니다. 오히려 인육을 바칠 것을 강요하는 무서운 신이었다.
◆ 케찰코아틀의 이름을 가진 사제왕
여러분이 아는 전설 속에 나오는 케찰코아틀은 대충 이렇다.
옛날 옛적에 케찰코아틀이 인간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내려왔다. 그는 왕이 되어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고, 인신공양의 풍습을 뜯어고치고 동물을 바치게 법을 바꾸었다. (버전에 따라서는 '꽃과 나비'를 바치라고 했다는 설화도 있다)
그런데 케찰코아틀을 시기한 그의 형제 테스카틀리포카가 그에게 용설란에서 채취한 즙을 권했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마시고 흠뻑 취해 버렸다. 사실 그것은 용설란 즙이 아니라 술(옥틀리, 또는 풀케)이었던 것이다. 케찰코아틀은 술의 존재를 몰랐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친여동생인 케찰페타틀과 동침했다.
이틑날 근친상간을 저지른 케찰코아틀은 큰 부끄러움을 느끼고 멕시코 땅을 떠나면서, 언젠가 세 아카틀의 해에 자신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인상적이고 멋진 이야기이긴 한데, 이 이야기는 케찰코아틀이 아니라 '토필친' 이라 불리는 톨텍 문명의 다섯번째 왕에 얽힌 전설의 일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케찰코아틀하고 이 전설은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딱 봐도 말이 안되는 것이, 아즈텍 신화에서 술 제조법을 인간에게 가르쳐준 신이 바로 케찰코아틀이다. 그런 신이 어떻게 술의 존재를 모를 수가 있는가?
그럼 왜 이 이야기가 케찰코아틀 신의 설화로 둔갑한 것일까?
그것은 토필친의 풀네임이 '세 아카틀 토필친 케찰코아틀' 이기 때문이다. 더욱 간략하게는 사제왕 토필친 케찰코아틀이라고 한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섬기는 신을 따라 이름을 붙이는 풍습을 가진 톨텍 왕국의 사제왕이었고, 공교롭게도 케찰코아틀의 사제였다. 게다가 그는 세 아카틀의 해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는 바람에 후대에 세 아카틀 토필친 케찰코아틀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실존인물이었던 톨텍의 왕 토필친 케찰코아틀은 정치싸움에서 패배해 실제로 톨텍에서 쫓겨났다. 위 우화는 '테스카틀리포카' 로 상징화되는 인신공양 찬동파, 다시 말해 보수파와 '토필친 케찰코아틀'로 상징되는 개혁파의 싸움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 같다.
이 사제왕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배리에이션이 있는데, 위에 언급한 버전도 '쿠아우티틀란 보고서' 와 '마법의 역사'를 하나로 합친 것이다. 하지만 설화는 설화인 법, 토필친 케찰코아틀은 멕시코를 떠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유카탄 반도로 내려가 마야의 왕이 되었다고 추정된다. 동시대에 서쪽에서 찾아온 이방인 왕 '쿠쿨칸'에 대한 설화가 마야 원주민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몬테수마 황제가 코르테스를 토필친으로 착각했던 정황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사아군 수사와 틀라텔롤코 학생들이 함께 쓴 플로렌스 고문서 속에서, 몬테수마 황제는 처음에 코르테스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눈 앞에서 인간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코르테스가 질색팔색을 하며 화를 내기 시작하자 그는 당황했다. 아즈텍 신화에서 인신공양을 거부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코르테스를 인신공양을 금지한 전설 속 왕 토필친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 근데 토필친이 신이었을 가능성은 없나?
없다. 아즈텍 귀족들은 자신들의 왕조 계보가 토필친으로부터 온다고 가르쳤다. 칼메칵에서 계보를 달달 외우듯이 배우는 아즈텍 지배층이 톨텍 왕 토필친을 케찰코아틀 신과 동일한 존재로 착각했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
이것은 마치 서양인들이 '고조선'과 '조선'을 햇갈려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환웅의 아들이었다고 가르치는 꼴이다.
예를 들어 토필친 케찰코아틀이 신이었다고 기록한 유럽인 역사가 프레이 안드레스 데 올모스는 케찰코아틀의 아버지가 카막스틀리 신이고 어머니는 치말마 여신이라고 주장하였다. 믹스코아틀 신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아즈텍의 기록에 따르면 토필친은 토테페우 왕의 자식으로, 서기 843년에 태어나 895년에 죽은 실존인물이었다.
이 내용은 몬테수마 황제의 딸인 도냐 이사벨 몬테수마가 직접 법정에서 구술한 황실의 내력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써놓은 스페인 역사가들의 소설과 계보를 달리한다.
황녀가 토필친을 인간으로 알았는데 황제가 토필친을 신이라 생각했을 리가 없다. 즉, 당시 아즈텍 귀족들은 아무도 케찰코아틀과 토필친(=코르테스)를 동일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 그럼 아즈텍 사람들이 코르테스를 신으로 믿었을 가능성은?
유감스럽게도 없다.
아즈텍 제국에서 민간 케찰코아틀 신앙의 정수를 간직한 도시는 촐룰라 시였다. 촐룰라 시는 톨텍 왕국 시절부터 케찰코아틀을 믿었던 유서깊은 도시이며 어찌보면 수도인 테노치티틀란보다 정통 뱀 신앙에 근접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틀락스칼라 역사'에 의하면 촐룰라 시 사람들은 코르테스가 자신의 도시에 입성하자 케찰코아틀 신에게 코르테스에게 천벌을 내려달라고 빌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나중에 이들은 코르테스를 계략에 빠뜨려 살해하려다가 코르테스에게 역으로 학살당한다)
물론 코르테스는 케찰코아틀 신전을 마구 때려부수는 것으로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 왜 케찰코아틀은 착한 신이 되었는가?
사실 아즈텍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딱히 악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몬테수마는 하루는 코르테스에게 '그대들은 우리들의 신을 악신이라 생각하지만, 이 분들은 사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배푸는 고마운 분이라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들의 관점에 있어서 인간 제물을 받으면 비와 바람을 내려주고 태양을 움직이는 틀랄록, 케찰코아틀, 우이칠로포치틀리와 같은 악신(?)들이 선한 신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에선 얄짤없는 악신이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이처럼 케찰코아틀을 선신으로 기록하였고, 심지어 인신공양을 막으려 한 신이라는 역사 왜곡까지 펼쳤다. 아즈텍 사람들이 보면 참 기가 찰 일이다. 코르테스가 오던 해에도 케찰코아틀 신전에서 인신공양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케찰코아틀의 화신 코르테스' 신화 때문인 것 같다. 만약 케찰코아틀이 인신공양을 좋아한다면 그 화신인 코르테스도 인간 제물을 좋아하는 혐성 터진 존재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당연히 그렇게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진짜로 케찰코아틀과 토필친을 구분하지 못해서 벌어진 참사였을지도 모른다.
◆ 착한 케찰코아틀의 신화에서 벗어나자
이처럼 수백년동안 케찰코아틀의 실체가 감춰지다 보니까, 현대인들은 케찰코아틀을 착한 신으로 그만 오해(?) 하는 경우가 많다. 피의 인신공희를 요구하는 아즈텍 신화에서 인간 제물을 금지한 유일한 개념신 정도로 미화되는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케찰코아틀은 대체로 착한 신으로 묘사되곤 한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출판한 판타지 라이브러리 백과에 쓰여진 케찰코아틀은 사제왕 설화와 뒤섞여서 인간 제물 대신 꽃과 나비를 바치자고 주장한 착한 신으로 둔갑해 있다. 고바야시네 메이드래곤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케찰코아틀 역시 술에 취해 여동생을 덮쳤다는 설화를 보면 영락없는 토필친이고, 인기 모바일 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케찰코아틀도 비슷한 내용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이제 진실을 알았으니 제대로 기억하도록 하자.
인신공양을 금지한 신은 개뿔.
실제론 제일 많이 받아먹은 신이다.
그리고 코르테스랑은 아무 연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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