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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모마리아의 성지] 루르드 기적의 샘물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기묘한 이야기 2019. 9. 5. 20:00

    <성모마리아 발현을 목격한 소녀 베르나레트>

     

    1858년 2월 11일 목요일, 프랑스 오트피레네 주의 남서쪽에 있는

    작은 시장 마을인 루르드에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중요 생계수단이었던 방앗간을 저당 잡힌 소작농의 맏딸이었던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데다 천식까지 앓고 있었음에도 집에서 땔 나무가 없어 걱정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만류에도 고집을 부려 여동생인 마리 뜨와네뜨와

    남동생의 친구인 잔느 아바디와 함께 강가로 땔감을 주우러 나갑니다.

     

    <당시 작은 시골 마을이었던 루르드>

     

    처음엔 잔 나뭇가지들이 종종 발견되던 공동묘지를 서성였으나 별다른 수확이 없자

    그들은 가브 강 근처의 산길을 따라 마사비엘 동굴 근처까지 가고 맙니다.

     

    그곳에서 방앗간 수로를 건너 동굴 맞은편인 농지로 향한 잔느와 뜨와네뜨와는

    달리 천식의 재발이 두려워 겨울의 차가운 수로를 겁내던 베르나레트가 여자이지만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잔느에게 자신을 업어서 옮겨달라 부탁하지만

    그녀의 거부표시를 듣고는 할 수 없이 수로를 건너려 신발과 양말을 벗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때, 베르나레트는 마치 폭풍우와도 같은 큰 소리를 듣고는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변화도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해하며 계속해서 양말을 벗으려 합니다.

     

    그 순간 또다시 처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놀란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다

    시선을 마사비엘 동굴 쪽으로 돌리자 마치 돌풍에 입구의 덤불이 움직이는 듯한

    광경에 넋을 잃고 시선을 고정하기에 이릅니다.

     

    곧이어 동굴 안쪽에서 금빛 구름이 나왔고 잠시 후에는 그녀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 나와 입구의 장미 덤불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여인은 베르나레트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으며 마치 자신의 어머니처럼 인자한

    미소를 보인 여인은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모습에 처음 가졌던 두려움이 모두 사라진 것을 느낀 베르나레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지고 있던 로사리오를 꺼내 들고는 이내 무릎을 꿇자

    여인은 마치 승낙의 표시를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여인은 16-17세 정도의 젊은 아가씨로 보였으며, 흰 옥을 입고 허리 부분에

    겉옷의 밑단까지 흘러내리는 푸른 색 띠를 매고 있었으며 머리에 쓴 흰색 면사포

    아래로 허리 뒤까지 흘러내리는 긴 머리와 신발을 신지 않은 발까지 내려온

    겉옷이 발을 덮고 있었으며 금색고리로 연결된 흰 로사리오를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인은 오른팔에 걸치고 있던 로사리오를 손에 들고는 성호를

    긋자 베르나레트도 여인을 따라 성호를 긋고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여인은 그러한 베르나레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 묵주기도의 한단이

    끝날 때마다 함께 영광송을 하였다고 합니다.

     

     

    잠시 후 둘러싸고 있던 빛과 함께 여인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지고 말지만

    베르나레트는 계속해서 무릎 꿇은 체 기도를 하고 있었고, 곧이어 돌아온

    동생과 잔느가 그런 모습을 보며 바보라고 놀리자 베르나레트는

    정신을 차리고 동생과 잔느에게 동굴에서 이상한 것을 보지 못 했느냐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한 대답들뿐이었습니다.

     

    이어 베르나레트 일행은 신기하게도 따듯하게 변한 수로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건너

    좀 더 편하게 집으로 갈 수 있었고, 집에 도착하기 전 궁금해하는 동생과 잔느에게

    베르나레트는 좀 전의 신기한 체험을 이야기해주기에 이릅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종일 여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던 베르나레트가

    저녁 식사 때 기도를 하던 중 자신이 겪은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

    걱정이 들어 울음을 터뜨리자 이유를 묻는 어머니에게 그녀의 동생이

    대신 대답을 해주었고 '환영을 봤을 뿐이니 그런 생각은 더는 하지

    말고 다시는 마사비엘에 가지 말아라'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날 침대에 들어가서도 여인의 얼굴이 떠올라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베르나레트는

    점점 그 여인을 또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해져 결국 일요일이 되어 완강히 반대하던

    어머니의 승낙을 얻어내 잔느와 여동생 마리와 함께 마사비엘 동굴로 향하게 됩니다.

     

    한편, 여인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베르나데트와 달리 이 이야기로 호들갑을 떨던

    마리 덕분에 조그만 시골 마을엔 소문이 금세 퍼져 아이들은 저마다 베르나데트를

    따라 마사비엘 동굴로 향하게 되었고 이 여인을 악마로 생각해 악마의 소행을 두려워

    하던 어른들의 생각에 따라 베르나데트 일행은 작은 병에 성수를 담아 가기에 이릅니다.

     

    베르나데트를 따라가기로 한 아이들이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잔느와 마리는 그들을 인솔하기로 했기 때문에 동굴에 먼저 도착한

    베르나데트는 그날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아이들도 동굴에 도착하였고, 첫날과 같이 여인이 베르나데트 앞에

    나타나자 그녀는 흥분하여 '저기에 계셔! 저기에!'라며 소리 질렀지만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이 중 하나가 '그 여자에게 뿌려!'라고 말하였고 동시에

    베르나데트는 성수를 뿌리지 않고 조용히 들고서 땅에 붓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인은 베르나데트가 성수를 붓는 것에 대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여주었고

    베르나데트는 무아지경에 빠져 한 지점만 응시한 체 마치 몸이 굳어버린 듯

    했으며, 잔느의 짓궃은 장난에도 의식을 잃은 사람처럼 꼼짝하지 않는

    베르나데트를 죽은 것으로 오해한 아이들이 울며 고함을 지르자 당시

    소문을 들어 알고 있던 근처 사비 방앗간의 니콜로 부인과 그 여동생이

    사고가 난 것으로 생각해 동굴로 달려와 베르나데트를 움직여 보고

    눈을 감기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어 니콜로 부인이 방앗간에 있던 자신의 28살 아들인 안또니를 불렀고,

    베르나데트의 모습을 본 안또니는 후에 사람들에게 '그런 놀라운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전 그 어린이의 몸에 손댈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하늘에서 온 천사이며 동굴에서 보았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 마을의 사람들에게 성모마리아 발현 현상을 믿게 해주는

    근거를 마련해주기에 이릅니다.

     

    한편, 겨우 사비 방앗간으로 옮겨진 베르나데트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했으며 여인과 함께 로사리오로 기도했으며 영광송을 같이 하고 기도가 끝나자

    여인이 사라졌다는 말을 하는 그녀를 딸이 죽은 줄 알고 울며 달려왔던 어머니가

    '넌 우리 가족을 웃음거리로 만드는구나, 그래, 성모님 이야기, 은총, 위선적인 꼴, 다 가져라!'

    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때리기 시작했고 두 모녀는 계속해서 울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미 여인에게 완전히 매료된 베르나데트는 계속해서 마사비엘의 동굴로 향했고

    그녀가 처음 여인을 보았던 날로부터 14일 후이자 아홉 번째로 여인을 보게 되는 2월 25일,

    이미 마사비엘의 동굴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

    400명가량의 군중이 그녀와 함께 새벽녘부터 동굴로 향하기에 이릅니다.

     

    이날 여인을 만나 기도를 하던 베르나데트는 여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가거라, 그리고 샘물로 씻고 마셔라'라고 말하며 가리킨 동굴 근처의

    진흙을 파고는 고운 얼굴에 흙탕물을 바르고, 동굴 바닥을 가리키며 말한

    여인의 '가서 네가 발견한 풀을 먹어라'라는 말에 따라 바위 앞의 야생

    풀을 뜯어 먹고 발현이 끝나가자 다시 무릎을 꿇은 체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이자 함께 있던 군중은 그녀의 기이한 행동을 마리아의 지시라고

    믿고 따라 하기엔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 그녀를

    실성했다 말하며 비웃기에 이릅니다.

     

     

    한편, 그녀가 팠던 진흙 구멍에서 졸졸 흐르던 물이 모여 지표면에 물줄기를

    이루기 시작하였고, 계속해서 솟아 나오는 물이 이윽고 샘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이후 이 샘물 덕분에 최초로 병을 고친 것으로 알려진 사고로 오른손이

    기형으로 변한 여성과 55세의 채석공 Louis Bouriette가 실명되었던

    오른쪽 눈의 시력을 회복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이윽고 많은 이들이

    샘물로 병을 고쳤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서 베르나데트를 따라 기도를

    하러 가는 군중은 8,000여 명 가량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점점 늘어나는 군중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루르드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는 동굴을 울타리로 막고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접근하는 자는 엄중히 처벌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베르나데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밤중에 어둠을 틈타 울타리 밖에서

    기도를 하며 여인을 지속적으로 만나 왔으며, 7월 16일 열여덟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여인을 만나 두 번 다시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미소를 받게 됩니다.

     

     

    한편, 프랑스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던 이 동굴은 나폴레옹 3세 황제가 개입해

    1858년 10월 4일 개장되면서 더욱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때까지도

    성모마리아의 발현과 관련한 숱한 논쟁에서 교회는 한발 떨어져 있기로 합니다.

     

    하지만, 전국에서 빗발치는 이와 관련한 질문들에 부딪힌 교회측은,

    결국 1858년 11월 17일 루르드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발족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베르나데트와 성모마리아의 발현, 기적의 샘에 대해 처음부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교회의 조사위원회와 그녀를 믿지 않던

    사람들이 '그 여인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더냐'라는 질문에

    3월 25일 네 번의 질문 끝에 여인이 대답해주었던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

    라고 대답했던 사실에 대해 베르나데트가 말해주자 교회의 조사위원회는

    그녀가 이제까지 겪었던 일들을 모두 진실로 믿게 되었으며

    1860년 1월 18일 지역 교구장은 '동정 마리아께서는 참으로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베르나데트가 말한 '원죄 없는 잉태'란 1854년 12월 8일

    교황 피우스 9세가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이라는 대칙서를 통해

    무원죄잉태설(마리아가 죄없이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는)이

    하느님의 계시이므로 모든 가톨릭 신자가 믿어야 하는 교리로

    정한 교회용어였으며, 당시 양육조차 힘들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소작농의 딸인 베르나데트가 이러한 교회용어를

    알 리가 없고 의미를 이해할 수조차 없을 것이므로 그녀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성모마리아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1858-1861년 사이에만 기적적인 치유의 보고가 100건을 넘었다고 하며,

    1864년에는 성모가 발현했다는 장소에 성모상이 지어지기에 이릅니다.

     

     

     

    한편, 1866년 스물둘의 나이로 프랑스 네베의 자애 수도원에 들어가기에 이르지만

    본래 병약했던 몸과 천식 때문에 수도원 생활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게 된

    베르나데트는 안타깝게도 1879년 4월 16일 폐결핵에 의해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수도원 구역 내의 성 요셉에게 봉헌된 작은 교회에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사후 30년 후인 1909년 9월 22일, 베르나데트의 시성(성인의 칭호를 부여하는)을

    위한 절차로 무덤발굴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주교 입회 아래 진행된 발굴에서 놀랍게도 무덤 속의

    그녀는 전혀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마치 잠을 자는 듯이 30년 전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발견됩니다.

     

    이후 두 번에 걸친 발굴에서도 부패 없이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던 베르나데트의 시신은,

    1925년부터 네베에 있는 생 길다 수도원 교회에 안치되어 일반에 공개되기에 이르렀고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마침내 시성되어 성녀 베르나데트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생전, 그녀에게 여인이 말해주었다는 '나는 너를 이 세상이 아닌,

    다음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주겠다'라는 약속이 이루어진 순간입니다.

     

     

     

     

    연간 6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루르드,

    지금까지 7천여 건의 기적적인 치유사례가 보고되었으며 성모순례지가 되어 오늘날

    파티마와 더불어 성모 공경의 근거지로서 교황들의 필수 방문 순례지인 루르드의

    기적의 샘과 성녀 베르나데트에 대한 진실은 어떤 것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순례지 중 하나가 된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아름다운 사실'에 대한 진실을 알아볼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우선 루르드의 샘으로 병이 완치되었다고 자기신고를 한 사람의 수는

    1862년 이래 6,700명에 이르지만, 교회로부터 정식으로 '기적'으로

    인정된 사례는 아쉽게도 66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66건은 현재까지의 기간으로 나눌 시 약 2년에 1건 미만 꼴이며,

    시대와 함께 의학이 발전을 이룬 근래 들어선 10년에 1건 이하로 그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1960년부터 현재까지의 50년간 인정된 사례는 4건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현재 연간 600만 명의 순례자와 관광객 중 샘물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의 수를 10명 중 1명으로 계산했을 때, 60만X149년=약 9000만 명 중 66건이며

    이는 지금까지 약 136만 명 중 1명꼴로 기적을 체험했다는 수치가 나오게 됩니다.

     

    또, 비교적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근래인 50년 동안의 사례를 분석해보면

    60만X50년=3000만 명이므로 약 750만 명 중 한 명이 기적을 체험했다는 분석이 나오게 됩니다.

     

    물론 이는 기적을 바라는 사람의 분포를 10%로 측정했을 때로,

    경우에 따라 기적을 체험하는 확률이 더욱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확률이 낮아진다면 사실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말도 약간은 민망해질 정도입니다.

     

    물론 이렇게 낮은 확률을 보이게 된 데에는 현명한 교회측이 '이때까지 받아 온 의료의

    효과와 자연 회복 등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현상을 넘은 치유인지, 그 치유가

    지속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증명해야 한다'라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마련한 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이러한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66건의 사례는 정말

    기적으로 봐도 무방할 수 있지만, 100% 루르드 샘의 효과로 병이 치유된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으며 실제 마음가짐과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의 변화

    덕분에 불치병이 치료된 경우를 확률로 따지면 오히려 이러한 기적보다도

    높은 확률을 보여줄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의 주장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국내의 한 방송을 통해서도 알려진 베르나데트와 기적의 샘 이야기에선

    샘물에 어마어마한 양의 게르마늄이 포함되어 이른바 게르마늄 광천수로

    표현된 적이 있지만, 실제로 그 양은 많지 않았으며 산소, 질소, 탄산 석회,

    마그네시아, 극소량의 탄산철, 알칼리성 탄산염 또는 규산염, 칼륨과 나트륨의

    염화물, 극소량의 칼륨과 소다의 황산염, 극소량의 암모니아, 극소량의

    요오드 등의 성분을 함유한 본질상 매우 깨끗한 수질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르나데트가 보았던 성모마리아와 그녀의

    사후 일어난 기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실, 베르나데트는 그 누구에게도 성모마리아를 보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본 여인을 '흰 귀부인'이라 표현했으며, 루르드의

    기적의 샘에 대해서도 그녀는 단 한 번도 '기적의 샘'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으며

    여인을 성모마리아로, 샘을 기적의 샘으로 부른 것은 그녀의 주위로 모이던 군중과

    후에 그녀를 인정해 성녀로 추앙하게 되는 교회측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 '무원죄의 잉태'라는 어려운 교회용어를

    알 리가 없으므로 이런 말을 한 여인의 정체는 성모마리아다라고 주장했던

    당시 교회 조사위원회 측의 의견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하지만, 제정된 지 4년이 넘은 교회용어를 일자무식으로 보이는 소녀가 알 리가 없다는

    고정관념은 마치 '코팅리 요정사진'을 옹호했던 코난 도일의 발언과 비슷해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한 옴니버스 밝혀진 요정사진의 진실과

    번외단편인 코팅리 요정사진의 나머지 진실을 참조하시길)

     

    그리고 베르나데트는 한 번도 자신에게 보이는 여인이 성모마리아라고

    한 적이 없으며, 그 여인을 비롯해 그녀 자신도 '기적의 샘', '병이 낫는다'

    라는 말을 한적도 없거니와 오히려 기적을 기대하고 샘으로 모여둔 대중들과

    교회측의 희망에 의해 루르드의 샘은 기적의 샘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당시 천식을 앓고 있던 베르나데트는 기적의 샘에는 눈도 주지 않은 체

    천식치료를 위해 이웃마을의 온천장을 다녔으며 샘의 기적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에 사실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부패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그녀의 시신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요?

     

     

    <일반에 공개된 베르나데트의 관과 그녀의 시신>

     

    처음 행해졌던 발굴에서 무덤의 높은 습도 때문에 그녀와 함께 매장된 십자가와

    로사리오는 색이 변색하고 부식되었지만, 그녀의 옷을 축축이 적셔놓을 정도의

    습도와 알맞은 환경 덕분에 시신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지만, 1925년부터 네베에 있는 생 길다 수도원 교회에 안치하기 위해

    두 번째로 무덤을 발굴했을 때 검게 변색한 그녀의 얼굴과 움푹 패인 눈,

    그리고 진행된 부패로 일반에 공개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교회측이

    그녀의 내장 일부를 없애고 사진을 기초로 생전의 얼굴을 흉내 내

    정교하게 만든 '마스크'를 얼굴 위에 덮은 체 일반에 공개하게 됩니다.

     

    결국, 성녀 베르나데트의 부패하지 않는 시신은 교회에 안치되어 일반에 공개되며

    사람들에게 기적의 감동을 보이며 신앙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맙니다.

     

     

    <가까이서 찍은 그녀의 시신>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한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본 환영이(아니면 그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대중에 의해 성모마리아로 불리게 되었고,

    자신이 만든 샘이(실제 조사결과 베르나데트가 팠던 진흙 근처의 바위 자체가 이미 샘물의

    원천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적의 샘으로 불리며 병마에 지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각지에서 온 환자들이 기적을 바라며 샘물을 마시고 몸을 씻는 것을 보며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를.

     

    그녀가 꽃다운 나이에 평생을 수도원에서 살기로 결심했던 것은

    속세의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나 어떠한 심적인 변화보다는,

    이러한 일이 자신으로 말미암아 생겼다고 자책하며 적어도 자신

    혼자만이라도 기적을 바라며 루르드의 샘을 찾는 많은 환자를 위해

    평생을 기도하겠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후 샘에서 일어났다는 기적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녀는

    병마 때문에 괴로워할 때에도 기적의 샘을 찾지 않고 평생을 기도하며 살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지금도 기적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땅 위로 나와 계속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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