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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FO의 진실을 밝히는 기관 MJ-12, 기밀문서 마제스틱 12의 완전한 진실
    기묘한 이야기 2019. 9. 8. 09:00

    <좌측부터 빌 무어, 제이미 샌드라, 스탠튼 프리드먼>

     

    1984년 12월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TV 프로듀서인 제이미 샌드라

    (Jaime H. Shandera)는 익명의 인물이 보낸 현상 되지 않은 35밀리 필름을 받게 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필름을 현상한 샌드라는 그곳에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 같은 것이 비쳐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자세히 보니 초대 CIA 장관 로스코 힐렌쾨터(Roscoe H. Hillenkoetter)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올린 문서로, 1947년에 일어난 로스웰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미국 대통령 직속의 UFO 문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비밀 기관 MJ-12(마제스틱 12)에 대해 쓰여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MJ-12 문서에 의하면 이 문서는 오직 대통령에게만 보고하는 복사가

    엄금된 극비문서이며, 1947년 9월 24일 배너바 부시 박사(Vannevar Bush)와

    국방장관 제임스 포러스틀(James Forrestal)의 권고로 트루먼 대통령이 설립한

    12명의 위원회를 뜻하는 마제스틱 12가 진행하는 극비작전에 관한 문서라고 합니다.

     

    초대 CIA 장관 로스코 힐렌쾨터(Roscoe H. Hillenkoetter), 배너바 부시 박사(Vannevar Bush),

    국방장관 제임스 포러스틀(James Forrestal), 미 공군의 Nathan Twining 장군, 미국 중앙 정보국의

    Hoyt Vandenberg 장군, 미국 네바다 주 핵실험장의 소장 Robert M. Montague 장군, MIT 항공연구학 교수

    Jerome Hunsaker 박사, OSS에서 독립한 NSA 정보국의 초대 국장 Sidney Souers 부제독,

    미 육군장관이자 CIA의 심리전 부대 부대장인 Gordon Gray 장군, 전쟁 중에 암호 연구를 하며

    CIA와 NSA의 보안 컨설턴트였던 하버드의 천문학자 Donald Menzel 박사, 의학물리와 항공 생리학

    박사이자 국립 과학 아카데미와 국립 연구 협의회, 그리고 존스 홉킨스&록펠러 대학의 회장인

    Detlev Bronk, 물리학자이자 무선 전문가며 부시 박사의 수석비서인 Lloyd Berkner,

    이렇게 총 12명의 당대 기라성 같은 멤버들로 이루어진 마제스틱 12는 대통령 직속의

    UFO 문제 전문 검토위원으로서 MJ-12작전이라는 비밀 계획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맨 위의 트루먼 대통령과 좌측부터 위의 열거 순으로 정렬된 마제스틱 12로 알려진 인물들>

     

    곧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샌드라는 친구이자 UFO 연구가인 윌리엄 빌 무어와

    이 문서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무어는 같은 UFO 연구가이자 핵물리학자이기도 한

    스탠튼 프리드먼을 불러 세 명이 이 문서의 진위를 확인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조사를 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에게 뉴질랜드로부터 워싱턴 DC의

    국립 공문서관에 가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발신인 불명으로 도착하게 됩니다.

     

    <미국의 국가적인 기록의 공문서를 보관하는 미국 국립 공문서관(Archiv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편지의 지시대로 1985년 7월 공문서관으로 향해 기밀이 해제된 수백 상자의 서류를 뒤지던 중,

    1954년 7월 14일 날짜의 아이젠하우어 대통령 보좌관 로버트 커틀러의 메모가 발견됩니다.

     

    메모에는 'MJ-12 특별 연구 프로젝트의 개요 설명'을 7월 16일로 예정된

    백악관 회의에서 시행한다고 쓰여 있었으며, 기밀이 해제된 후 국립 공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이 메모는 비밀 기관인 MJ-12가 실존한다는 증거이자

    샌드라 자신이 받은 필름 속 MJ-12와 동일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MJ-12에 대해 충분한 확증을 얻었다고 생각한 샌드라, 무어, 프리드먼은

    1987년 5월 29일 이 사실을 문서와 함께 공표해 당시 TV나 신문에서 다루어지며

    미국 정부에 의한 UFO 은폐 공작과 같은 극비가 백일하에 공개되며 큰 화제를 모읍니다.

     

    한편, 이 문서를 공표하게 되는 윌리엄 무어는 MJ-12가 1981년 2월 미국

    카트 랜드 공군 기지에서 특별 조사국(AFOSI) 임무에 종사하고 있던 높은 지위의

    군사정보 기관원 리차드 도티에 의해 미국 정부와 UFO와의 연결을 나타내는

    '아쿠아리어스 문서(Aquarius document)'를 본적이 있는데 이미 그곳에서 MJ-12가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주장도 하게 됩니다.

     

    또, MJ-12의 설립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포러스틀 국방장관에게 이를 지시하는

    내용을 담은 일명 '트루먼 포러스틀 문서'의 하단에 조작되지 않은 실제 트루먼 대통령의

    친필서명이 선명히 남아 있어 해당문서와 샌드라, 무어, 프리드먼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그렇다면, MJ-12 문서가 담고 있는 내용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이제부터 미국의 UFO 연구 단체 NICAP의 전 부회장이었던

    리처드 해리슨 홀의 저서 'UNINVITED GUESTS'에 게재되었던

    MJ-12 문서의 실물 카피본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번역으로 말미암은 일부 의역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브리핑 문서: 마제스틱 12 작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준비: (극비)

    1952년 11월 18일

     

    경고: 이것은 미합중국의 안보에 극히 중요한 것으로 분류된 정보를 담은 일급기밀-극비 문서이다.

    여기 본 극비의 접근은 마제스틱-12 인가認可 등급의 보유자로만 엄격히 제한한다.

    어떠한 형태의 복제나 필사 또는 기계장치에 의한 메모 기록을 엄금한다. 

     

     

     

     

     

     

    건명: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마제스틱-12 작전 예비 브리핑

    1952년 11월 18일에 문서 작성됨.

    브리핑 담당관: 로스코 H. 힐렌케터 해군 대장 (MJ-1)

     

    주목: 본 문서는 어디까지나 예비 브리핑이다

    본 문서는 전체 작전 브리핑을 위해 만들어진 개론으로 보아져야 한다.

     

    마제스틱-12 작전은 미합중국 대통령에게만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일급기밀의 연구 개발/정보 작전이다.
    본 프로젝트의 작전들은 배너바 부시 박사 및 제임스 포레스탈 국방장관의 권고에 따라

    1947년 9월 24일 트루먼 대통령의 특별 기밀 대통령령에 의해 제정된

    마제스틱-12(Majic-12) 위원회의 통제하에 수행된다. (첨부파일 'A' 참조.)

    마제스틱-12 위원회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이 지정했다.

     

    로스코 H. 힐렌케터 해군 대장Adm. Roscoe H. Hillenkoetter
    배너바 부시 박사Dr. Vannevar Bush
    제임스 V. 포레스탈 국방장관Secy. James V. Forrestal
    나단 F. 트와이닝 장군Gen. Nathan F. Twining
    호이트 반덴버그 장군Gen. Hoyt S. Vandenberg
    데틀레프 브롱크 박사Dr. Detlev Bronk
    제롬 훈세커 박사Dr. Jerome Hunsaker
    시드니 W. 사우어스Mr. Sidney W. Souers
    고든 그레이Mr. Gordon Gray
    도널드 멘젤 박사Dr. Donald Menzel
    로버트 M. 몬태규 M. Gen. Robert M. Montague
    로이드 버크너 박사Dr. Lloyd V. Berkner

    1949년 5월 22일 포레스탈 국방장관의 사망으로 결원이 생기면서

    1950년 8월 1일까지 계속 비어있었다가 동일자에 월터. B. 스미스 장군으로 영구 대체 지정되었다.

     

     

     

     

    1947년 6월 24일, 한 민간조종사(주: 케네스 아놀드)가

    워싱턴 주 캐스케이드 산맥 상공을 비행 중 고속으로 편대비행하는

    아홉기의 원반형 항공기를 목격했다.

    비록 이는 앞서 언급한 물체에 대해 처음으로 알려진 목격건은 아니었으나,

    대중 매체로부터 처음으로 광범위한 주목을 받은 목격건이었다.

    이후 수백건의 유사한 물체를 목격했다는 보고가 잇달았다.

    이 중 많은 보고건의 출처가 극히 신뢰할 수 있는 군 및 민간인들로부터였다.

    이 보고들은 다양한 군 부서들이 국방상의 관점에서

    이러한 물체들의 본질 및 목적을 알아내고자 제각각 노력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수의 목격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원반이 비행중이라는 보고에

    몇 차례 항공기를 이용한 추적에 애썼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대중의 반응은 때론 히스테리에 아주 가까웠다.


    이러한 노력에도, 쭉 물체의 실체에 대해 거의 알 수 없었으나 한 지역 목장주가

    로스웰 육군 항공 기지(현 워커 필드)의 북서쪽 약 75마일(주: 약 121km) 지점

    뉴멕시코 변경 지대에 이 물체 하나가 추락했노라고 보고했다.


    1947년 7월 7일, 과학적 연구를 위해 이 물체의 잔해를 회수해 확보하고자 비밀작전이 개시되었다.

    이 작전과정 중에, 폭발이 있기 전 어느 시점에 항공기에서 비상탈출한 것으로 보이는

    인간과 닮은 조그마한 생물 넷이 공중정찰로 발견되었다.

    이 생물들은 잔해 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2마일(주: 약 3km) 지점에 땅으로 떨어졌다.

    넷 모두 사망했으며 발견되기 이전 약 일주일이 지나도록 육식동물에 뜯기고

    비바람에 노출되면서 심하게 부폐해 있었다.

    특수과학팀이 연구를 위해 이 시체들의 이송을 맡았다. (첨부파일 'C' 참조.)

    항공기의 잔해 또한 각지로 이송되었다. (첨부파일 'B' 참조.)

    해당 지역 민간인 및 군 목격자들의 보고가 있었으며,

    기자들에게는 물체가 잘못 유도된 기상관측 기구였다는 효과적인 변명을 했다.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트와이닝 장군과 부시 박사의 주관하에 은밀히 분석에 노력한 결과,

    항공기가 아마 단거리 수색용 정찰기일 것이라는 예비 합의를 낳았다. (1947년 9월 19일)

    이 결론은 대부분 항공기의 크기 및 식별가능한 보급품이

    명백하게 부족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첨부파일 'D' 참조)

    네구의 탑승원 시체도 브롱크 박사에 의해 유사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이 그룹의 임시 결론은 이 생물체들이 보기엔 인간 같기는 하지만,

    생물학상 및 그들의 발달에 책임이 있는 진화 과정이 호모사피엔스에서 관찰되고

    상정되는 것과는 명백하게 딴판이었다는 것이다. (1947년 11월 30일)

    브롱크 박사팀은 더 확실한 명칭에 합의할 때까지는 이 생물체들을 언급할 때

    '지구 외 생물학적 개체Extra-terrestrial Biological Entities' 또는

    'EBEs'라는 용어를 표준 용어로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항공기가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된 것이 아니란 게 사실상 확실하므로,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를 중심으로 많은 추측이 진행되었다.

    비록 몇몇 과학자들, 특히 멘젤 박사는 우리가 다루고있는게

    다른 태양계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고려했지만 화성도 예나 지금이나 가능성이 있다.


    잔해에서 문자 형태로 보이는 샘플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이것들의 해독에 힘써봤지만 여전히 대체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첨부파일 'E' 참조)

    마찬가지로 추진 방법 내지 동력원의 본질 또는 동력원의 전달 방식을 밝혀내려는 노력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일련의 기계장치 연구가 난항에 빠진 것은 날개로 인식 가능한 것, 프로펠러,

    제트 엔진 내지 통상적인 추진 및 유도 장치가 전무했으며 게다가 금속 배선, 진공관,

    또는 이와 유사하다고 인식 가능한 전자 부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어서다. (첨부파일 'F' 참조)

    추진기관은 추락의 원인이 된 폭발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항공기의 성능 특성 및 목적에 대한 가급적 많은 추가 정보의 필요성은,

    1947년 12월에 미공군의 프로젝트 SIGN으로 알려진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SIGN과 마제스틱-12 사이의 연락담당자는

    공군 물자사령부의 정보과 인원 두 명으로 제한하

     이 둘의 임무는 경로들을 통해 특정 종류의 정보를 전파하는 것이다.

    1948년 12월에 SIGN은 프로젝트 GRUDGE로 발전되었다.

    이 작전은 현재 코드명 BlUE BOOK하에 수행되며,

    동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공군 장교를 통해 연락이 유지되고 있다.


    1950년 12월 6일, 아마도 유사한 기원의 두 번째 물체가 대기 사이로 긴 궤적을 남긴 후에

    텍사스-멕시코 국경 지역의 엘 인디오-게레로 지면에 고속으로 충돌했다.

    수색팀이 도찯했을 무렵 물체는 완전히 소각된 채 남아있었다.

    그러한 물질 중 회수할 수 있는 것은 연구를 위해 뉴멕시코 샌디아에 있는

    A.E.C(주: United States Atomic Energy Commission, 1946년에 창설된

    미국 원자력 위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엔 핵무기 제조 및 원자력 연구가 주임무였음) 시설로 이송되었다.

    이러한 방문자들의 동기 및 궁극적인 의도가 여전히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국가 안보의 영향에 지속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게다가, 이러한 항공기의 감시 활동이 5월부터 크게 급증한데 이어

    금년 가을까지 지속된 것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전개가 임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당한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이유뿐만 아니라, 맹백한 국제적 및 기술적인 고려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중의 패닉을 방지해야 한다는 궁국적인 필요성으로,

    마제스틱-12 위원회가 삼엄한 보안 대비책의 시행을 새 행정부에서도 방해받지 않고

    그대로 지속해야 한다는 데에 만장일치의 의견이다.

     

     

    동시에 사태의 공표를 재촉당할 때를 대비해

    비상사태 플랜 MJ-1949-04P/78 (최고 기밀-극비) 을

    종래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첨부서류 ‘G’ 참조)

     

     

     

     

     

    <좌: 첨부 서류 일람 / 우: 첨부 서류 "A">

     

     

     

    1947년 9월 24일

     

    국방장관에게 보내는 보고서

    포레스탈 국방장관 귀하

     

    최근 본 건에 대해 대담했던 대로, 이로써 귀하에게

    최대한 신속하고 신중하게 임무를 수행할 권한을 부여합니다.

    이후로 본 건은 오로지 마제스틱 12 작전으로만 지칭합니다.


    향후 본 건의 최종적인 처분은 귀화와 부시 박사 및 중앙 정보부장(주: CIA 국장)간의

    적절한 논의에 따라 오로지 대통령비서실(주: 대통령의 국정수행 보좌를 위한 대통령 직속 참모기관)이

    내려야 한다는 게 본인의 변함없는 견해입니다.

     

    해리 트루먼(서명)

     

     

     

     

     

     

    954년 7월 14일
    트와이닝 장군에게 보내는 메모
    건명: 국가안전보장회의/MJ-12 특별 연구계획

     

    대통령 각하께서 MJ-12SSP(주: MJ-12 특별 연구계획) 브리핑을

    먼젓번에 정한 일정을 바꾸어 7월 16일로 예정돼 있는 백악관 회의에서 하도록 결정하셨습니다.

     

    세부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내방 시 설명드리겠으니 귀하의 일정을 변경하기 바랍니다.

     

    상기 변동사항에 대해 귀하가 동의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로버트 커틀러
    대통령 특별보좌관

     

     

    여기까지가 MJ-12 문서의 내용과 1985년 7월 공문서관에서 발견한 기밀이 해제된

    아이젠하우어 대통령 보좌관 로버트 커틀러의 메모인 '커틀러 문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역사적인 스캔들인 MJ-12, 일명 UFO 조사위원회 12명을 칭하는

    마제스틱-12(Majestic 12)는 정말 당시 미국정부의 UFO와 관련한 극비문서일까요?

     

     

    담백한 진실 편

    MJ-12 문서가 세상에 공개되기 전, 이를 발표했던 멤버 중 한 명인

    윌리엄 빌 무어는 미국의 카트 랜드 공군 기지에서 특별조사국(AFOSI)의

    임무를 맡고 있던 높은 지위의 군사정보 기관원 리차드 도티가 보여준

    아쿠아리어스 문서에서 MJ-12를 언급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MJ-12가 많은 화제를 끌면서 당시 AFOSI가 직접 조사를 벌였는데

    실제로 리차드 도티는 높은 지위의 군사정보 기관원이 아닌 공군 하부의

    부사관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아쿠아리어스 문서 또한

    위조된 문서인 것으로 판명되어 결국 윌리엄 빌 무어가 이 문서를

    스스로 작성했던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또, 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MJ-12 문서와 커틀러 문서

    또한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MJ-12 문서의 모순 하나, 날짜 표기법

     

     

    문서에 기재된 '06 August.'나 '07 July.' 등, 날짜를 나타내는 문장 중 한자릿수의 숫자 앞에

    '0'을 붙이고 있지만 실제로 정부 문서 중 이와 같은 표기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06 December. 1950.'이나 '30 November. 1947.'과 같이 달의 뒤에도 마침표를

    넣고 있지만 이 기법은 잘못된 것이며 진짜라면 '6 December 1950.'이나 '30 November 1947.'

    처럼 연도의 뒤에만 마침표를 넣는 것이 미국정부의 문서 표기법입니다.

     

     

    MJ-12 문서의 모순 하나, 로스코 힐렌쾨터에 대한 표기 오류

     

    당시 로스코 힐렌쾨터의 계급이 실제론 해군 소장(Radm)임에도 MJ-12 문서에서는

    해군 대장(Adm)으로 잘못 표기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힐렌쾨터의 이름표기에 대해서도 실수가 있었는데, 다른 문서에서는

    반드시 'R. H. Hillenkoetter'라고 쓰여있는 반면 MJ-12 문서에서만

    'Roscoe H. Hillenkoetter'라고 쓰여있는 오류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MJ-12 문서의 모순 하나, 페이지 누락을 막기 위한 기재 누락

    진짜 극비 문서는 페이지가 빠지지 않은 것을 보증하기 위해 'Page __of__pages'

    라는 식으로 전체 페이지 중 몇 페이지라는 식으로 페이지마다 이것이 기재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MJ-12 문서에는 이것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MJ-12 문서의 모순 하나, 당시 시대상에 맞지 않는 단어의 사용

     

     

    MJ-12 문서에서는 'media', 'extra-terrestri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용어가 일반화되어 사용되어 진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그래서 미디어를 뜻하는 단어로 'media'가 아닌 당시 언론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하던 'press'로, 지구 외 생명체를 뜻하는 단어인 'extra-terrestrial' 대신에

    마찬가지로 'ali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MJ-12에서 외계인을 뜻하는 EEBs(Extra-terrestrial Biological Entities) 용어 자체가

    당시 시대에 사용되었던 단어라고 보기에 부적절함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EBs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로 1988년 리바이스 광고에서 리바이스사의 중역이자

    당시 MJ-12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연구소의 이사였던 Robert. H라는 인물에 의해

    젊은이들이 EEBs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있는데, MJ-12 문서가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에 아무도 알 수가 없었던 EEBs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며

    이는 모종의 간접적 세뇌공작이며 대중 심리작전이라는 음모론은 사실

    MJ-12 문서의 공개가 1987년 5월 27일 이루어졌으며 해당광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서 호사가들에 의해 파생된 '또 하나의 MJ-12 음모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MJ-12 문서의 모순 하나, 잘못된 표기로 기재된 기관명

     

     

    'Roswell Army Air Field(로스웰 육군 비행장)'를 'Roswell Army Air Base

    (로스웰 육군 항공 기지)'로, 'Walker Air Force Base(워커 공군 기지)'를

    'Walker Field(워커 비행장)'라고 잘못 기재한 것도 눈에 띄는 점입니다.

     

     

    MJ-12 문서의 모순 하나, 대통령 행정명령 번호의 오류

     

    대통령 명령의 행정명령 번호는 초대부터 일련 번호화 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그 번호를 보면 어느 대통령의 시대에 나온 것인가를 곧바로 알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만, MJ-12 문서의 트루먼 대통령 행정 명령 번호가 '92447'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은 1972년 3월 6일 닉슨 대통령의 행정 명령 번호가 '11652'

    라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J-12 문서의 모순 하나, 사용된 타이프 라이터

     

    마지막으로 MJ-12 문서에 사용된 타이프 라이터가 1940년 당시에 존재할 리 없었던

    1963년 제조된 스미스 코로나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변명할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하기에 이릅니다.

     

     

    <제임스 랜디와 함께 대표적인 회의론자로 꼽히는 Phillip J. Klass>

     

    이러한 사실을 간파해낸 필립 클라스(Philip J. Klass, 미국 항공 전자 공학 전문 잡지인

    Aviation Week and Space Technology의 전 편집장이자 MJ-12 문서에도 언급되고 있는

    프로젝트 블루 북의 미해명 사건들을 해결하기도 한 'UFO계의 셜록 홈즈', 그 유명한

    '초능력 사냥꾼' 제임스 랜디와 초정상 현상에 관한 과학적 탐구 위원회인 CSICOP를

    창설하기도 한 대표적인 회의론자-프로젝트 블루 북은 1952년 3월에 프로젝트 싸인과

    프로젝트 그랏지의 임무를 계승해 설치된 UFO조사기관의 명칭이며 1969년 12월

    해산할 때까지 1만여건이 넘는 UFO 목격 보고를 모았으며 94%의 해명사건을 제외한

    정보 부족등에 의해 미해명으로 끝난 6%의 사건을 필립 클라스가 상당수 해결하게 됩니다)는

    MJ-12 문서의 트루먼 대통령 친필 서명과 당시 대통령이 배너바 부시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 쓰인 서명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내기까지 합니다.

     

    즉, MJ-12 문서의 진실을 말하는 데에서 가장 큰 증거 중

    하나였던 당시 트루먼 대통령의 친필 서명은 부시 박사 앞으로

    보내진 편지에 쓰여있던 것을 카피한 것이었다는 게 밝혀지고 맙니다.

     

     

    그리고 커틀러 문서의 모순들

     

     

     

     

    커틀러 문서에는 '기밀 부외비 정보'라는 라벨이 붙여지고 있지만,

    이 기밀 구분은 약 20년 후인 닉슨 정권시대 이후부터 사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젠하우어 대통령 도서관에서 이 기밀 구분이 당시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당시 커틀러는 워터마크가 보이는 얇은

    반투명의 용지를 사용하였지만, 이 문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 Top Secret의 등록 번호가 빠져 있으며 문서에 따르면 1954년 7월 16일에

    국가 안전 보장회가 개최되었어야 하는데 실제론 이날에 개최되지 않고

    당시 회의 내용을 기록한 'Official Meeting Minute Files'에서도

    MJ-12나 UFO와 관련한 내용은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커틀러가 이 문서를 썼다고 하는 1954년 7월 14일에

    그는 미국에 없었으며, 실제론 당시 7월 3일부터 15일까지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를 방문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필립 클라스는 윌리엄 무어가 쓴 모든 편지에서 MJ-12 문서와

    커틀러 문서에서처럼 달(月)의 뒤에 써넣는 마침표, 한자릿수의

    숫자 앞에 붙이는 '0', 그리고 그가 작성한 것이라 스스로 밝혔던

    아쿠아리어스 문서에서 MJ-12에서와 같이 문법상의 실수를

    발견하면서 문서의 위조를 담당한 사람이 윌리엄 무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MJ-12 문서에서 로스웰에서 UFO가 추락하여 외계인을 회수했다는

    내용처럼 무어는 70년대 후반부터 이미 30여 년이 지나 화제성이 없던

    당시의 사건을 다루는, 로스웰의 UFO 추락과 외계인 시체의 회수와 관련한

    저서를 출판해 MJ-12 문서로 불붙은 외계인 열풍에 힘입어 많은 돈과 명성을 손에 넣게 됩니다.

     

    <MJ-12와 대립하는 또 다른 극비사항을 공개한 밀튼 윌리엄 쿠퍼>

     

    한편, 제이미 샌드라, 빌 무어, 스탠튼 프리드먼이 공개하며 MJ-12가 세간의 화제를 낳으면서

    (실제론 공표 당시 TV나 책등의 언론에 소개되며 화제를 부르지만, 이후 서서히 관심에서

    멀어지며 TV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미스터리 중 하나로 소개되는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공개한 MJ-12는 'Majority 작전'의 은폐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이며

    이 Majority 작전을 해군에 소속되어 있을 때 상관에 의해 보게 되었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기밀내용이라는 주장을 하는 밀튼 윌리엄 쿠퍼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제스틱 12처럼 실제 비밀위원회가 있지만

    이는 모두 Majority 작전을 은폐하기 위한 가짜라는 것입니다.

     

    쿠퍼가 실존한다고 주장하는 Majority 작전은 포획된 외계의 기술을 미국의 우주계획에

    적용시키는 'Red Light Project'를 포함하며, 인위적으로 외계의 위협을 가공해 전체주의와

    사회주의적인 단일 세계정부를 만들려는 목적이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 등장한 음모론에 UFO 연구가인 존 리어와 윌리엄 영이 지지하고 나섰으며,

    곧 MJ-12의 실존을 주장하는 샌드라, 무어, 프리드먼과 격렬하게 대립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위서이긴 해도 당시 많은 물적 증거들을 제시했던 MJ-12파에 비해

    해군 상관에 의해 이러한 작전을 알게 되었다는 주장 외에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하지 않던 Majority 작전파는 MJ-12파에 상대가 되지 못하였고

    UFO 긍정론자 연구가들에게도 증언 내용에 모순이나 실수가 있다는

    평가와 공군을 전역하고 해군에 재입대하여 부사관이었던 그가 정부의

    극비문서를 취급했다는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됩니다.

     

    결국, 쿠퍼를 지지해 왔던 리어와 영마저 그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인 것을 알게 되었다며 결별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맙니다.

     

      

    <쿠퍼는 애초 등장과 함께 색다른 음모론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떠나면서 급속도로 힘을 잃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진위가 확실치 않던 MJ-12 문서가 회의론자,

    UFO 연구가, 국립 공문서관(NARA), 공군 특별 조사국(AFOSI),

    연방 수사국(FBI) 등의 조사로 거짓인 것이 밝혀지자

    당시 Majority 작전에 관련된 개요들을 보았으며 다른 이들의

    조사와 UFO와 관련된 서적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쿠퍼의 주장 또한 MJ-12 음모론과 함께 도매금으로 취급되기에 이릅니다.

     

    <사실 마제스틱 12 멤버 중 한 명으로 알려진 도날드 멘젤박사는,

    하버드의 천문학자였으며 엄청난 UFO 회의론자로서 'UFO계의 셜록 홈즈'로

    불리는 필립 클라스조차 그와 비교하면 UFO 긍정론자이다라는 평을 받은 인물이었지만

    애석하게도 MJ-12 문서에 의해 이후 파생되는 많은 음모론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추종자들에 의해 그가 9/11 테러를 예언했다는 등 이후에도

    많은 활동을 보여주는 쿠퍼지만, 1998년 아리조나에서 살면서 해당 지역의

    의사를 둔기로 폭행하면서(aggravated assault with a deadly weapon)

    탈세혐의와 함께 체포 영장이 내려지는 일이 생깁니다.

     

    결국, 쿠퍼는 2001년 11월 6일 오후 11시 40분 자신의 저택에서 무장상태로

    아파치 카운티 보안관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사망하지만 죽어서도

    추종자들에 의해 정부가 고용한 암살자에게 총살되었다는 식으로

    잘못 알려지며 스스로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고 맙니다.

     

     

    <MJ-12로 알려지는 이들이 함께 찍은 사진, 위에 MJ-12라고 써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우주에 대한 잘못된 호기심으로 탄생하게 된 MJ-12(Majestic 12)는 결국,

    진실은 저 너머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또 하나의 사건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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