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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제국의 기괴한 풍습과 문화, 유적들 - 3부기묘한 이야기 2019. 8. 29. 17:31
◆ 너희는 우리의 빵이다
아즈텍 제국이 배출한 최고의 재상이자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였던 틀라카엘렐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신에게 새롭게 건축된 대신전을 봉헌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그의 형인 몬테수마 1세에게 한 말이었다.
"우리의 신들을 위한 음식을 찾자. 신들이 배가 고플 때 식사에 필요한 인간 제물을 사러 가기 편리한 시장을 찾자.
우리가 배가 고프면 따끈한 옥수수 빵을 먹는 것처럼...
우리들의 시장과 장터를 틀락스칼라, 우엑소트신고, 촐롤라, 아틀릭스코, 틀릴루키테펙, 테코악의 여섯 개
부족 앞에 위치시킨 것은 참으로 현명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도시의 주민들은 위대한 신들에게 화덕에서 막 꺼낸 따끈따끈하고 말랑한 빵과 같으니,
이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할 땐 이들을 멸망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신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맛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악한 틀라카엘렐이 내뱉은 망언들은 한두개가 아니지만 이토록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내용은 좀처럼 없었다. 이 발언이 아스테카 민족이 주변 부족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단숨에 요약해서 뇌리에 꽝꽝 때려박아 준다.
그들은 주변 부족들을 같은 인간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저 피를 요구하는 자신들의 흡혈귀 같은 신들에게 바칠 가축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틀라카엘렐의 말에 의하면 '꽃 전쟁'은 아즈텍인들이 옥수수빵을 사기 위해서 시장에 나들이를 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위로 여겨졌다.
◆ 제국의 통치를 위해 인구를 조절하라
언급한 것처럼 아즈텍 부족이 지배하고 거느리는 부족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비록 이들이 공물과 포로를 바치면 자치권을 인정하는 느슨한 체제로 묶여있는 불안정한 제국이긴 하였으나, 그들은 애초에 직접 통치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냥 제때 공물을 내고 신전에 봉헌할 인간 제물들을 바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테노치티틀란, 테츠코코, 틀라코판의 세 도시국가가 중앙아메리카 모든 부족의 부를 빨아먹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들의 수탈은 너무나 가혹하고 혹독했다. 평시에 아즈텍은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치라고 윽박을 질렀다. 그런데 테노치티틀란의 인구수는 코르테스의 기록에 의하면 약 25만에 육박하였으나, 이들이 다스리는 우악스텍, 토토낙, 믹스텍, 코탁스틀라, 오리사바, 틀락스칼라 등의 인근 부족들의 숫자는 약 2천 만에 달했다고 한다. 당연히 어느 정도의 인구 조절은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이 개발한 것이 꽃 전쟁과 인신공양이었다. 주기적으로 꽃 전쟁을 일으켜 사회의 일꾼인 청년층을 데려가 대규모 처형으로 제거해서 인위적으로 인구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덤으로, 이들은 아즈텍 공동체 내부의 사회적 약자들 역시 정기적으로 소모하였다. 주로 하층민 계급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마야, 잉카 등의 메소아메리카 제국들과 아즈텍을 본질적으로 갈라놓은 점이었다. 신에게 바치는 깨끗한 제물이라는 종교적 의미에 충실하여 최고의 전사를 선발하여 바치거나,
왕족이 직접 자해하여 피를 흘린 마야나 잉카의 인신 공양에선 심지어 약간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그에 비해 아즈텍인들은 죽어도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죽어 마땅한 타 부족의 청년들, 죄수들, 어린이들, 여성들을 바쳤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추악한 목적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 기발한 발상을 처음 고안해낸 사람이 틀라카엘렐이었다.
◆ 아즈텍 빵집에 어서오세요.
아즈텍 주변 부족들은 결국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비참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들은 아즈텍 시민들이 누릴 부귀영화를 위해 피땀흘려 일하다가 꽃 전쟁으로 끌려가 인간 도살장에서 생을 마쳐야만 했다. 이들이 가장 애용한 '빵집'은 바로 아즈텍의 인근 부족이자 이웃사촌이었던 틀락스칼라 족이었다.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 수사는 '누에바에스파냐의 풍습사' 2권에서
아즈텍인들의 식인 요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포로는 잘게 저며졌다. 넓적다리는 목테수마의 식탁으로 보내졌고, 나머지는 귀족이나 그들의 친척 몫이었다.
고기는 일반적으로 죽은 자를 생포했던 사람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들은 옥수수를 넣어 살을 익힌 다음, 작은 대접에 고깃덩어리를 나누었고, 국물과 옥수수도 함께 먹었다. 그 요리의 이름은 틀라카틀롤리였다"
틀라카틀롤리란 곧 틀락스칼라인으로 만든 고기 스튜를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고상한 인육 요리의 미학마저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연대기 작가인 프란시스코 세르반테스 살라사르에 의하면, 아즈텍인들은 주로 사람의 팔다리를 먹었지만 그 중에서도 손과 발은 사제와 통치자들만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부위였다고 전한다.
넓적다리 역시 가장 맛좋은 부위이므로 황제의 수라에 올랐던 것이다.
참고로 이들은 머리를 먹지 않았기에 뇌수를 먹음으로서 발생하는 프리온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머리는 아즈텍 전사들의 자랑스러운 전리품이었고, 전편에서 상술한 촘판틀리에 주렁주렁 꿰어 열매처럼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상술한 누에바에스파냐 풍습사에 수록된 삽화에는 아즈텍 일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고기를 나눠먹는 정겨운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 우리 선조님들이 식인종이었을 리가 없어
아즈텍의 후예를 자처하는 멕시코는 어떻게든 식인 풍습을 옹호하고 싶어한다. 1955년에 등장한 어떤 민족주의 단체는 한술 더 떠서 "식인 풍습은 모두 스페인이 날조한 새빨간 거짓말들이며, 아즈텍은 인간을 먹은 적이 없다" 고 주장하기 까지 한다. 미국 내의 히스패닉들도 이 주장에 열광하여 스페인 정복자들을 거짓말쟁이라고 욕했다.
이들은 스페인 역사가들은 애초에 정복자의 입장이었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며 기존의 문헌학적 증거를 전부 부정하며, 아즈텍 고문서에 나오는 심장과 피는 전부 카카오 열매와 옥수수를 은유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원주민 역사가들인 치말파힌이나 알바 익스틀릴소치틀은 식인 풍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거로 들기도 한다.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사아군 수사를 비롯한 무수한 연대기 기록자들이 악의를 가지고 아즈텍을 왜곡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들이 묘사하는 식인 풍습은 상상의 산물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생생할 정도다. 또 아즈텍인들 뿐만 아니라 연대기에는 동맹군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에 대해서도 묘사되어 있기에 딱히 한쪽만을 편들었다고 보긴 힘들다.
식인이 부끄러운가? 인도, 파푸아뉴기니, 피지, 콩고를 비롯한 여러 문명권 부족들이 식인 풍습을 갖고 있다. 미대륙으로 한정하자면 브라질과 페루의 부족들도 식인을 하였다. 아즈텍과 동시대에 살았던 시시멕족 역시 식인 풍습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된 지 오래이다. 당시 식인 풍습은 중미 전체에서 만연하였다.
그런데 이들만 식인을 안 하였다니, 참, 놀랄 노자다.
◆ 먹었잖아, 임마!
그런데 결국 통탄스럽게도 아즈텍인들의 식인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굴되고야 말았다. 2014년에 멕시코 국립 인류학 연구소의 가비노 로페스 아레나스가 이끄는 발굴단이 템플로 마요르(대신전) 근처에서 식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뼈를 찾아냈던 것이다.
의식이 끝난 후에 곧바로 먹혔다고 증언하는 연대기의 기록대로 발굴된 뼈들은 대신전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희생자들은 먼저 목을 잘리고 살이 발라진 다음 불에 구워졌다. 절단흔과 불에 지진 변형흔을 지닌 두개골, 경골, 상완골, 턱뼈 등 다수의 유해는 아즈텍 식인에 대한 명백한 증거물들이다.
비록 규모나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필요하지만 최소한 아즈텍 사람들이
식인을 했다는 것만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다.
◆ 왜 먹었을까?
아즈텍인들이 식인을 했다면 도대체 왜 했을까? 인육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 대해선 여러가지 이견이 있지만 학계에선 제의적 의미로 먹었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폴리네시아나 파푸아뉴기니의 부족들이 인육을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사의 살을 뜯음으로서 그의 정기를 흡수하는 것이다.
마이클 하너와 마빈 해리스는 아즈텍에 단백질을 공급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기에 인육을 먹은 것이라는 가설을 펼친 적이 있고, 한때는 이것이 대중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가설은 허점이 많다. 당장 테노치티틀란이 호수 위에 있는 도시라는 점만 생각해봐도 된다. 또 아즈텍 사람들은 식용 개와 칠면조를 길렀고 콩을 통해 부족한 단백질을 섭취하였기에 이들이 꼭 영양이 부족해서 식인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즈텍은 수도를 포함한 부유한 일부 도시가 다른 도시를 착취하며 공물을 빨아들이는 구조였다. 게다가 대규모 식인은 대체로 음식이 풍부한 수확철에 행해지는 사치스러운 행사였고 멕시코에서 가장 풍족한 도시였던 테노치티틀란의 식인률이 제일 높았던 것은 생태학적 이유로 절대로 설명할 수 없다.애초에 인육은 기호품이었다. 인간 고기는 일반 시민들이 좀처럼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날에 나오는 맛좋은 별미였던 것이다. 아즈텍 인들이 우리가 쌀을 먹듯 끼니마다 인간을 먹었다는 편견은 오해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굶주리거나 단백질이 모자라서 인간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버리기 아깝고 맛있어서 먹은 것이다. 또 신에게 바쳐진 제물들은 신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믿었으므로 이들을 뜯어먹음으로서 신앙심을 더욱 깊게 하였을 수도 있다.
◆ 어린아이도 잡아먹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이들이 먹는 인육 중에는 어린이도 예외는 없었다. 앞서 언급한 INAH의 로페스 아레나스는 이런 의식들이 특정 기간에 행해졌다고 언급했는데,
예를 들어 멕시카 달력의 첫 달을 축하하는 기념식 동안 몇몇 아이들이 물과 비의 신 틀랄록에게 바쳐진
다음 요리되어 잡아먹혔다.
그거 먹어봤자 얼마나 고기가 나온다고 그랬는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으로 끔찍한 악습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아즈텍에선 다들 이렇게 했다. 그런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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