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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시 연쇄살인사건(살인의추억) 일지 - 3부
    기묘한 이야기 2019. 9. 9. 19:00

      

     

    "여자들 니가 다 죽인 거지"

    "아무도 안 죽였어"

    "이 자식이 이게 증거까지 다 나왔는데 어디서, 어!"

     

     

    · 태안읍 병점리의 홍모씨(당시 43세)

     

    - 홍모씨가 늦은 밤 사건이 있던 진안리 일대의 논과 야산등지에서

      플래시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남

    - 1987년 5월 4일 밤 9시경, 병점리 모 술집(다방)에서 술집 종업원 이모양(당시 23세)에게
      '2,3일 내에 또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너도 빨간 옷을 입으면 이틀 내에 죽는다'라고 말함

    - 태안읍에서 피살된 5명의 피해자 중 3명이 빨간 상의를 입고 있었다고 함

    - 그동안 수배된 범인과 홍모씨의 인상착의가 비슷한데다 그의 얼굴이 동안으로 밤에

      보았을경우 20대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1987년 5월 10일, 유력한 용의자로 연행조사
    - 홍모씨의 회사동료들이 연행 사흘째인 12일 면회를 요청하나 거절당했고,

      친지에게조차 연행돼 조사받고 있는 장소를 통보하지 않음

    - 13일 지난해 10월부터 발생한 5건의 살인사건 중 3건에 대해 자백

    - 홍모씨는 작년 10월 아내가 가출한 뒤 부터 밤중에 동네를 무작정 돌아다녔으며, 아내가

      평소 즐겨 입던 붉은색의 옷을 입은 여자를 보면 성적충동을 느껴 범행했다고 진술

    - 작년 12월 12일 밤 9시경, 회사를 퇴근하고 나오는데 근처 ㅇ 제과점에서 붉은 옷차림의 여자(권정분씨-3차)가

      나타나 자신도 모르게 흥분, 따라가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숨지게 하고 눈과 흙으로 파묻었다고 자백

    - 또, 두 아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 자장면을 먹고 집에 와 잠을 자다가 깨어나 밖에

      나가 박은주씨(당시 29세-6차)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범행을 했다고 자백

    - 박은주씨를 야산으로 끌고 가 등산용 칼로 위협, 옷을 벗게 해

      추행한 뒤 다시 옷을 입혀 발로 차 기절시켜 목을 졸라 죽였다고 자백

    - 홍모씨가 진술한 등산용 칼 확보

    - 아내가 가출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결코 벌어지지 않았으리라고 말함

    - 부천에 사는 부인 박모씨(당시 36세)는 남편이 이상성격자로서 성적으로

      시달려 가출했으며, 평소 붉은 옷을 자주 입은 것도 사실이라고 경찰에 진술

    - 홍모씨의 수첩에서 태안지서, 정남지서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

      추궁한끝에 자기 대신 억울한 사람이 잡힐 경우 자수하려고 적어 놓았다는 자백을 얻음

    - 5차 피해자 홍진영양(당시 19세)의 시신이 발견된 황계리 논둑에서 현장검증을 시행

    - 자백 중 어느 부분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고 현장검증에서도 범행장소를 정확히 대지

      못하는 등 진범으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경찰의 한 관계자가 전함

    - 14일 구속영장 신청

    - 13일, 15일 두 번이나 홍모씨의 자백을 담은 자술서 등을 포함한 수사기록을 검찰에 구속지휘품신을

      하나 직접적인 물적증거로 볼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증거재보완 지시를 받음 

    - 국립과학연구소에 감정의뢰해 박씨 몸에서 발견된 체모

      등의 감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이를 증거물로 보강키로 함

    - 그러나 자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직접증거를 찾지 못해 검찰로부터 두 번이나 증거보완지시를

      받고도 홍모씨의 신병을 연 7일째 계속 붙잡아두며 불법구금이라는 지적을 받음

    - 16일 오전 대동수사란 명목으로 신병을 확보한 체 시골지서여관 등에서 강압적인 강제수사를 지속 

    - 유두현 경기도경 수사과장은 용의자 홍모씨를 임의동행형식으로 데려와 장소를

      옮겨다니며 대동수사 방식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구금은 아니라고 주장

    - 연행 초기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도 있었으나 신중을 기하기 위해 장기간 조사한 것이라 주장

    - 경찰은 홍모씨의 트레이닝복 상의와 구두에 묻은 흙이 피해자 박은주씨 살해 현장의 흙과 동일한지에

      대한 감정결과를 통보받아 16일 중 재지휘건의해 반려된다면 풀어준 뒤 보호관찰할 방침을 세움

    -16일 밤, 국립과학연구소로부터 박은주씨 사건 현장의 흙과 홍모씨 구두의 흙에

      대한 감정결과 유사점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이날 밤 11시 반경 홍모씨 석방

    - 기자회견에서 홍모씨는 지난 10일 경찰에 연행돼 구금상태에서 수사를 받으며

      그동안 경찰의 가혹행위는 없었으나 경찰서 형사계 지서숙직실 여관방들을

      옮겨다니며 조사를 받던 중 홧김에 내가 범인이라고 말해버렸다고 밝힘

    - 또, 술집(다방) 종업원에게 한 발언에 대해 집사람이 가출한 후 가끔 가슴이

      답답해 술을 마셨는데 그날도 술을 마시고 술김에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다

    - 한편, 홍모씨를 이상성격자와 성도착증이 있는 사람으로 진술했던 부인 박모씨(35)는

      지난해 11월 연하의 남자를 따라 가출해 부천에 살고 있던 것으로 드러남

     


    · 안양 시안양1동의 이모씨(당시 24세)

     

    - 1987년 5월 28일, 이모씨를 용의자로 연행 조사
    - 경찰이 발표한 바로는 12월 20일 밤 9시 40분경, 화성군 정남면 신리 앞길에서 귀가 중이던 심모양(당시 29세)을
      2백미터가량 뒤쫓아가 흉기로 위협, 논두렁으로 끌고 들어가 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쳤으며 4차 피해자인

      이계숙양(당시 22세)이 살해된 지난해 12월 14일을 전후해 정남면과 태안읍 일대를 밤마다 배회했다고 함
    - 특히 심모양이 피해를 볼뻔한 날 밤도 비가 왔었다는 점을 들어 6차 피해자 박은주씨의 살해 당일 알리바이를 캠

    - 그러나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점 발견 못함


     

    · 주거부정의 이모씨(당시 28세)

     

    - 1987년 7월 4일, 용의자로 지목돼 서울 남부경찰서로부터 인계받은 이모씨

      (당시 무직)를 조사한 결과 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밝혀내고 남부경찰서로 되돌려보냄

    - 경찰이 발표한 바로는 이모씨를 철야 조사한 결과 범행 자백내용이 범행사실과 전혀

      다른데다 이모씨가 경찰이 때릴 것 같아 미리 겁먹고 허위자백했다며 자백내용을 번복


     

    · 화성군 오산읍의 문모씨(당시 22세)

     

    - 1988년 5월 10일, 지난 3월부터 친척 처녀를 폭행하기 위해 2회나

      침입했다는 주민제보 등 7개 항의 용의점을 들어 문모씨를 연행조사
    - 지난 3월부터 문모씨를 미행, 문모씨가 최초로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일대를

      배회했고 최근 두 차례 여자를 폭행한 사실을 확인,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 문모씨가 11차례 부녀자를 폭행한 사실을 밝혀내고 여죄를 추궁하여 자백을 받음

    - 1986년 9월 19일 피살된 이완임 할머니(당시 71세-1차)와 같은 해 10월 20일 박현숙(당시 25-2차)씨 등을

      성폭행한뒤 살해했고 박현숙씨를 살해할 때 반항하는 피해자의 얼굴을 손톱깎이로 그어 상처를 입혔다고 진술

    - 12일 오후 2시경 현장 부근을 샅샅이 수색, 문제의 손톱깎이를 찾아냄

    - 경찰은 박현숙씨가 피살 당시 얼굴에 상처가 있었으며 상처가 예리한 것이 아닌 둔한

      쇠붙이에 의한 것이어서 문모씨의 자백내용이 신비성이 큰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

    - 수원지검은 구속영장을 받고 자백내용에 신빙성이 적다는

      이유로 기각하고 경찰에 직접적인 증거보강 등 재수사를 지시

    - 문모씨가 자백했다는 두 명에 대한 자백내용과 손톱깎이에 부착된 칼 길이 5센티미터에 대해

      자백에 신빙성이 없고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자백을 보강할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

    - 이후 별다른 혐의점 찾지 못함

     

     

    · 수원 ㅅ 교회 전도사 전모씨(당시 37세)

     

    - 1988년 12월 21일, 태안읍 능1리 산길에서 50대 여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던 전모씨가 경찰에서 고문에 못 이겨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허위자백했다고 항소,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이에 대해 무죄판결 받음

     

     

    · ㅇ 악기회사의 윤모군(당시 19세)

     

     

     

    - 1988년 9월, 박상희양(당시 13세) 사건 때 길가에 숨어 있다 여자젖가슴을

      만지고 달아나는 버릇이 있다는 주민의 말에 따라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적 있었음

    - ㅇ 악기공원서 근무하는 윤모군을 김미정양(당시 14세-8차)이 살해되기

      6일 전인 11월 9일 저녁 6시 50분경, 사건현장 부근인 원바리 고개에서 정모양

      (당시 21세)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검거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

    - 1990년 12월 15일, 경찰에 연행돼 김미정양을 살해했다고 자백

    - 지난달 15일 저녁 6시경 회사에서 퇴근, 통근버스를 이용해 태안 병점국교 앞에서 내려

      귀가하던 중 갑자기 성적충동이 일어 사건 현장에서 2백 미터쯤 떨어진 삼성석재 앞 야산에서

      범행대상을 물색하 던중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김모양을 발견 뒤쫓아갔다고 함

    - 1백 미터쯤 쫓아가다 원바리고개 부근에서 행인이 없는 틈을 이용 김미정양의

      입을 막고 손을 비틀어 위협한 뒤 강제로 길옆 소나무숲으로 끌고 가 옷을 벗기고 성폭행

    - 반항하는 피해자를  목졸라 살해한 뒤 화 성연쇄살인사건의 동일범으로 위장하기 위해 김모양의 필통에서
      연필깎이 칼을 꺼내 가슴을 20여 회에 걸쳐 긋고 볼펜과 수저로 국부를 난자한 뒤 팬티와 거들을 입히고
      스타킹으로 손발을 뒤로 묶어 2-3미터쯤 떨어진 언덕 아래 소나무 밑에 시체를 유기했다고 자백

    -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김모양이 소리치며 반항해 우발적으로

      죽였다며 범행 후 자수하려 했으나 겁이나 못했다고 밝힘

    -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며 혈액형이 범인이 남긴 정액에서 확인한

      B형과 같고 사건 현장 부근에 살고 있어 범인임이 틀림없다고 단정

    - 그동안의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

    - 하지만, 충동적으로 김양을 성폭행하다 우발적으로 목 졸라 살해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목에

      감겨있는 스타킹이 꼼꼼하게 매듭지어져 있고 범행도 초범치고는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지적

    - 한편, 윤모군이 지난달 15일 저녁 6시 40분경 태안읍 병점5리 사건 현장에서 3백여미터쯤

      떨어진 ㅌ 공장 앞길에서 피해자를 뒤쫓을 당시 퇴근하던 20대 근로자 3명 중 얼굴을 알고있는

      목격자를 봤다고 진술함에 따라 인근공장을 상대로 수사한 결과 드릴제조공장인 (주)탕가로이

      근로자 윤모양(당시 21세)를 찾아내고 당시 윤모양이 윤모군을 목격한 사실을 확인

    - 윤모양은 사건 당일 저녁 6시 33분쯤 회사에서 퇴근, 동료근로자 2명과 함께 걸어가던 중

      평소 인상이 오빠와 비슷하게 코 왼쪽에 점이 있어 기억하고 있는 윤모군을 목격했다고 함

    - 피해자를 난행할 때 손에 피가 묻었다는 진술에 따라 윤모군의 잠바

      양쪽소매끝부분 재봉실을 뜯고 감정한 결과 혈흔을 찾았다고 발표

    - 윤모군이 범행 뒤 현장에서 1.5미터 떨어진 곳의 솔잎에 피묻은 손을 닦았다고

      진술함에 따라 국립과학연구소팀이 부근을 정밀검색한 결과 혈흔을 발견

    - 그러나 도시락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을 채취해 놓았으나 윤모군의 지문과는 다르고

      범행추정시간이 실제 김모양이 친구 이모양과 헤어져 집으로 귀가하던 시간과 1시간 차이를 보임

    - 지난 15일 회사에서 경찰에 연행돼 가족면화조차 금지된채

      폐쇄된 공간에서 강압적인 수사를 받았을 가능성이 큼

    - 윤모군은 지난 2월 수원 ㅅ 공고 전기과를 졸업, ㅅ 산업 등에서 근무하다

      지난 10월 중순 화성ㅇ 악기회사로 옮겼으며, 성격이 온순하고 말이 적은편이며

      20여만원의 월급을 모두 집에 내놓는 등 성실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짐
    - 퇴근 시간도 일정해 저녁 7시까지는 늘 귀가, 사건 당일도 저녁 7시 전에 귀가했다고 함

    - 동료직원 이명배씨(당시 28세)는 윤모군이 지난 10월

      중순 입사한 이래 늘 성실하고 착하게 생활해왔다고 밝힘

    - 경찰은 윤모군이 숨진 김미정양을 연필깎이 칼로 난자한 사실을 자백했다고 밝혔지만,
      상처의 깊이와 상처주변 피멍들의 크기 등을 고려할 때 범인이 연필깎이 칼보다 큰 흉기로
      난자했을 가능성이 짙고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연필깎이 칼에서 김미정양의 혈흔이

      발견되지 않는 등 윤모군이 자백한 범행내용의 신비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

    - 또, 경찰을 윤모군의 가족면회를 제한하고 있으며 보도진에게 윤모군의 신병을

      공개하지 않아 수사과정에서 윤모군이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자백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낳음

    - 12월 22일, 현장검증과정에서 현장재연을 하던 중 아버지가 죽어도 좋으니 양심대로 말하라고
      소리치자 감자기 고개를 저으며 말을 않고 있다 범행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57분 만에 현장검증이 중단됨

    - 윤모군은 경찰이 계속하라고 요구하자 형사분들이 무서워서 거짓으로 진술했다고 말했으며, 잠시 후 회사

      이과장과 병점역 부근에서 인삼막걸리를 먹고 집에 들어간 것 외에는 전혀 기억할 수 없다고 범행사실을 전면부인
    - 윤모군은 이어 현장검증에 입회한 수원지검 김홍일검사가 양심대로 진술하라고 말하자 죽어도 그런 일은 없다,

      사건현장에 와본 일이 없으며 경찰에 연행된 첫날 여인숙에 있을 때 한번 온 일 밖에는 없다고 말함

    - 그러나 23일 저녁 6시 반경의 기자회견에서 경기도경 이인섭 국장, 문원태 수사본부장,

      이정길 강력과장 등은 윤모군이 오늘 오후 3시경부터 최초 자백대로 범행을 시인하고 있다고 주장

    - 이국장 등은 윤모군이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범행을

      재차 자백했으며, 이러한 범행 자백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공개

    - 테이프에는 김미정양이 임신해 어린애를 갖고 집으로

      찾아올 것 같아서 체외사정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음

    - 그러나 윤모군은 재판부의 증거보전 신문에서 김미정양을 살해하지

      않았으며 사건 현장에는 수사관과 함께 가본 것이 처음이라고 진술

    - 한편, 경찰이 윤모군을 정모양 강제추행혐의로 구속하는 과정에서 정모양과 가족들이

      1차진술조서작성때 윤모군이 범인인지 확신할 수 없고 진술내용도 사실과 다르다며

      시정을 요구했으나 경찰에서 일방적으로 손도장을 찍게 했다는 주장이 나옴

    - 이 부분이 문제가 되자 경찰은 23일 오후 정양 가족들이 입회한 가운데

      정양의 2차 진술조서를 받는 등 수사과정 전반에서 조작의혹을 받게 됨

    - 24일, 윤모군이 21일 변호사를 만나 김미정양을 살해한 적이 없다고 범행을 부인했으나

      경찰이 이 부분을 삭제하며 변호사 접견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 드러남

    - 윤모군이 사건 당일 저녁 6시 50분까지 다니던 직장의

      사출과장 이희준씨(당시 34세)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

    - 이에 대해 경찰은 윤모군이 저녁 6시쯤 회사에서 퇴근, 이날 저녁 6시 30분경

      화성 병점국교 앞에서 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다 감자기 성적충동이 일어 김미정양을

      뒤쫓아가 같은 날 저녁 6시 50분쯤 피해자를 강제로 납치 후 강간한 뒤 살해했다고 발표
    - 26일 오후 3시 20분부터 시행된 2차 현장검증에서 윤모군이

      범행사실을 전면부인하며 경찰이 시키는 대로 자백했다고 말함
    - 이에 담당변호사인 정해원씨는 오후 4시 45분쯤 윤모군이 수감된

      경기도 화성경찰서에서 접견을 요청하나 피의자 조사중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함

    - 31일, 현장주변 소나무가지의 문제의 혈흔에서 혈액형을

      판정할 수 없다는 통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받음
    - 김미정양의 목 부위에서 당시 발견되었던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3cm가량의 횐색모발을
      방사선동위원소 분석법으로 감정한 결과 역시 윤모군의 모발이 아닌 것으로 판명
    - 2월 8일 오후, 지난해 연말 김지정양의 교복에 묻어 있던 정액과 윤모군의

      혈액을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에 DNA 지문감식을 의뢰했던 결과를 통보받음
    - 결국, 윤모군의 혈액과 김미정양의 교복에 묻어 있던 정액 분석 결과 동일인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음

     

     

    · 오산시 원동의 박현우씨(당시 29세)

     

    - 1990년 10월 30일 밤 화성군 양감면 지역에서 퇴근하던 박모양(당시 21세)을 야산으로

      끌고 가 추행하려다 박모양이 비명을 지르자 달아난 혐의로 1991년 1월 2일 경찰에 연행조사

    - 경찰조사 도중 안양경찰서 경목인 김주락목사(당시 52세)에게 박현숙씨

      (당시 25세-2차)와 안기순씨(당시 54세-7차) 사건의 범인이라고 고백

    - 박현우씨는 1986년 10월 20일 밤 화성군 정남면에서 태안읍 쪽으로 걸어가던 중 만난

      박현숙씨를 보는 순간 성적충동을 느껴 부근 논 가운데 짚더미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피해자가 비명을 질러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농수로에 피해자의 시신을 밀어놓고 달아났다고 자백

    - 또, 1988년 9월 7일 밤 화성군 팔탄면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말다툼을 벌인 뒤 밖으로 나와 걸어가던중
      만난 안기순씨를 논두렁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피해자가 비명을 질러 목 졸라 숨지게 했다고 자백

    - 1월 4일 오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성적충동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며

      그동안 무척 괴로워하다 이번에 자백하게 됐으며 번복하지는 않겠다고 말함
    - 그러나 박현우씨의 자백을 담은 녹음테이프 외에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음
    - 1991년 1월 7일 담당변호사인 김칠준 변호사를 만나 경찰의 가혹행위는 없었지만

      조사과정에서 경찰의 위압적인 태도에 겁이나 범행사실을 허위로 자백했으며 경찰이

      화성사건의 사진첩을 반복해 보여줘 범행현장 등의 정황들을 알게 됐다고 말함

     

     

    · 강원도 태백시 철암1동의 박모씨(당시 39세)

     

    - 9차 권순상 할머니(당시 69세)가 살해된 이후 행방을 감추었고, 평소 직업 없이

      생활해 왔으며 범행현장에서 가까운 지역에 살았다는 점을 들어 박모씨를 수배

    - 1991년 5월 20일, 용의자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박모씨가 강원도 태백경찰서에 검거돼 조사착수

    -  박모씨는 이날 오후 3시 20분쯤 태백시 철암1동 속칭 피내골 산중에서

      어머니(당시 65세)가 갖다 준 주먹밥을 먹고 산에서 내려오던 중 경찰에 붙잡힘

    - 그러나 박모씨의 혈액형이 숨진 권순상 할머니 체내에서 발견된 범인의 혈액형과 다른

      O형으로 밝혀지고 피해자 손가방에서 발견된 지문과 다르며 별다른 혐의점 찾지 못함

     

     

    · 동탄면의 박모군(당시 19세)

    - 1991년 5월 26일 용의자로 박모군(노동직)을 부천 중부경찰서로부터

      신병을 넘겨받아 화성사건과의 관련 여부를 집중수사

    - 경찰은 박모군이 9차 권순상 할머니(당시 69세) 사건이 발생했던 동탄읍이 고향이고 범인의

      혈액형과 같은 B형이며 추행혐의 전과경력을 갖고있는 점 등을 용의점으로 보고 수사

    - 특히 권순상 할머니 사건이 있던 4월 3일, 사건 현장에서 4-5km 떨어진 자신이 생활했던

      화성군 동탄면 장지리 ㅅ 보육원에 놀러 왔다가 이날 하오 8시쯤 나갔다는 진술을 함에 따라

      사건발생시간을 전후한 행적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를 벌임

    - 조사결과 박모군은 화성군 동탄면 ㅅ 보육원출신으로 국교 4학년을 중퇴했으며

      지난 89년부터 보육원을 나와 경기도 오산시에 중국음식점종업원으로 전전했으며,

      사건발생 4일 뒤인 지난달 7일 부천시노동현장에서 일해왔었다고 함

    - 하지만, 조사결과 별다른 혐의점 찾지 못함

     

     

    · 화성 연쇄살인사건 강압수사가 낳은 피해자들

     

    - 당시 화성군 내의 10-30대 불량아들(당구장이나 밤거리를 배회, 또는 전과자가 있는) 거의

      모두를 용의 선상에 올리며 수사를 위해 각 지서에 소환하며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함

    - 유력한 용의자로 보인다 싶으면 강제연행, 강압수사, 감금, 구타, 사건일지 주입과

      세뇌로 인한 자백유도 등을 강요하며 인권문제에 대한 논쟁을 야기시키기도 함

    - 이로 인해 용의자들의 범행 자백 테이프는 늘어가나 번번히

      수원지검으로부터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 기각당함

    - 1990년 11월 27일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나온 차겸훈씨(당시 38세)가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다 12월 18일 오후 3시 48분경 태안읍 진안1리 병점역에서 1백여m 떨어진 열차 건널목에서
      부산발 서울행 새마을호 8호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일이 생김

    - 이어 1990년 12월 7일 용의자로 경찰에서 3차례 조사를 받고 나온 ㄷ 공고 3학년 김동진군(당시 18세)은
      화성 그린피아호텔과 현대여인숙에서 경찰에게 온몸을 몽둥이로 맞아 허리 통증과 두통을 호소,
      극도의 정신불안증세와 신경쇠약증세를 보이며 새벽 2-3시에 맨발로 이웃집에 들어가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리를 자주 해 결국 치료받게 되는 불상사가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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