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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말 달에 착륙했을까?, 달 착륙에 대한 음모론의 진실과학, 역사, 기타지식 2019. 9. 4. 20:00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 존 F. 케네디, 1962년 9월 12일 휴스턴 연설
"이것은 개인의 작은 한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 닐 암스트롱, 1969년 7월 21일 02:56 UTC(미 동부 시간 오전 10시 56분) 달에서
냉전 시대인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공위성 보스토크 1호로
무중력 상태의 우주권에 돌입해 187마일의 고공에서 시속 1만 8,000마일 속도로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일주하며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성공의 영광을 소련에 안겨줍니다.그러자 세계최초 인공위성의 영광을 1957년 10월 4일 소련의 스푸트니크로 빼앗기며
자존심을 구겼던 미국은 소비에트 연방의 기술력에 두려움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리하여 1960년 11월 대통령 당선 당시 우주 탐사와 미사일 방어에서 소련에 우위를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던 존 F. 케네디는 1961년 4월 13일 우주 과학 위원회를 소집하기에 이릅니다.
1961년 4월 20일 케네디는 부통령 린든 존슨에게 미국의 우주 계획에 대해 검토하라고 요구하는
메모를 전달했고, 린든 존슨으로부터 '1966년에서 67년 사이에 달 착륙을 성공하는 것이
소비에트에와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답변을 얻습니다.
결국, 1961년 5월 25일 단지 한 명의 우주인만이 지구 궤도 선회에 성공했을 뿐인 나라의
대통령인 케네디는 미국 의회의 양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폴로 계획을 선포하며
10년 내에 달에 가겠다는 미항공우주국 NASA조차 믿지 못할 발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케네디의 연설이 있었던 후 소련 역시 다시 한번 미국의 자존심을 짓밟기 위해 계획을세우게 되었고, 미국은 아폴로 계획에 어마어마한 돈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당시 루나 2호를
달 뒤편에 충돌시키는 등 승승장구하던 소련과의 연합계획까지 고려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2차례에 걸쳐 미국은 소련에 기술, 자금 협력 제안을 거부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케네디가 피격당하며 양국은 독자적인 달 탐사를 준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달 탐사 레이스가 시작되며 양국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면서 우주선 개발과
우주인 훈련에 매진하였고, 미국이 먼저 아폴로 1호를 통해 유인 테스트 비행을 시도하다 발사 전
화재 발생으로 세 명의 우주비행사를 잃게 되며 1년 10개월 동안 아폴로 4-6호로 무인 테스트를 하게 됩니다.
이후 1968년 10월 11-22일 미국이 유인 비행으로 재개한 아폴로 7호가
우주 비행에 성공하며 최초로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방송합니다.
한편, 소련이 1968년 초 달 착륙선의 개발을 거의 다 끝내고 N-1 로켓을 테스트하며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첩보를 입수한 NASA가 당시 개발 중이던 새턴V 로켓을 테스트도 없이
우주비행에 투입하는 도박을 감행하기에 이르렀고, 다행히도 1968년 12월 21-27일 20시간에 걸쳐
달 궤도를 10회 선회 비행하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궤도에 진입한 우주선을 탄생시킵니다.
(아폴로 8호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상한 옴니버스, 달에는 산타클로스가 있다' 편을 참조바람)
이에 질세라 유인 달 탐사 로켓인 N-1을 완성한 소련은,
그러나 1969년 3월 7일 로켓이 폭발하게 되는 불운을 겪습니다.
그리고 달에 갔다 왔다는 상징적 의미를 획득한 미국은 달 착륙선에 대한 지속적인 준비와
당시 254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예산, 그리고 NASA와 우주비행사들의 피와 땀을 기반으로
1969년 7월 16일 발사한,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을 태운 아폴로 11호를 7월 20일 달에 착륙시키게 됩니다.
당시 사령선에서 분리된 착륙선이 달에 착륙하기 전 컴퓨터의 알 수 없는 경보오류와
지름 100m 정도의 크레이터와의 충동을 피하고자 조종을 반수동으로 전환하는 등,
우주비행사들과 NASA의 빠른 상황대처로 착륙선 '이글'은 달에 무사착륙 하게 됩니다.
그리고 월면 활동을 마친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은 1969년 7월 24일 웨이크 섬으로부터
2,660km 동쪽, 존스튼 환초로부터 380km 남쪽, 항공모함 호넷(USS Hornet)으로부터는 24km 떨어진
서경 169도 9분, 북위 13도 19분의 태평양 상에 무사귀환 하여 격리병동에서 달 표면으로부터의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위한 3주간의 검사를 받은 8월 13일, 달에 갔다 온 인류 최초의 3인은 뉴욕,
시카고,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성대한 퍼레이드로 환영받습니다.
<아폴로 계획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한 영상>
7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달착륙과 월면 활동을 TV로 시청했으며 기념우표와 메달, 그리고 아이들의 장래희망에
한가지 카타고리를 추가시켜 준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성공은, 그러나 이후 무서운 소문에 휩싸이게 됩니다.
달착륙 조작설, 사실 인간은 달에 가지 않았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일파인 'Flat Earth Society'의 대표였던 찰스 존슨은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아서 C. 클라크의 각본으로 헐리우드 제작진들이 애리조나에서 촬영한 것'이라는 주장을,
그리고 2001년에 이르러 폭스 TV가 방영한 'Conspiracy Theory: Did We Land on the Moon?'으로
말미암아 대중들에게 달착륙 조작설을 크게 어필하며 '인류 최대의 프로젝트'였던 달착륙이
'인류 최대의 사기극'으로 인식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됩니다.
특히, 아폴로 로켓들을 설계했던 회사이자 아폴로 11호 엔진의 설계를 담당한 'Rocketdyne'에서
분석자 겸 기술자로 근무했던 빌 케이싱은 당시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새턴V 로켓과 함께
이륙은 했지만, 눈에 띄지 않게 지구주위를 8일 동안 선회하고 그동안 NASA에선 비밀군사기지이자
미국 내 가장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는 'Area 51'에서 미리 촬영한 가짜 달착륙 영상을 틀어,
마치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실제로 있다고 믿게 하였다는 주장을 담은 자신의 저서
'We Never Went to the Moon'을 출판하고 2001년 방영된 폭스 TV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자신을 'Moon Hoax Investigator', 즉 '달 사기극 조사원'으로 소개하며 현재 만들어져 있는
달착륙 조작설 주장의 기본적인 틀을 제공합니다.
이후 숱한 논쟁을 불러들이며 한때 미국 국민의 약 20퍼센트를 '우리는 한 번도 달에 가본 적이 없다'
라고 믿게 한 달착륙 조작 음모론,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정말 달에 간 것일까요?
달착륙 조작설의 주장들과 그에 대한 반박들
FOX TV 프로그램에서의 빌 케이싱과 자칭 달 사기극 조사원들의 주장
· 당시 달에 갔다가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확률은 약 0.0017%, 한 마디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 이것은 어디까지나 빌 케이싱의 주장일 뿐이며, 이러한 주장을 하는 빌 케이싱에게 근본적인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알려진 것과 달리 그는 Rocketdyne에서 분석자, 기술자, 또는 설계자가 아닌 문서관리 쪽에서
일을 했을 뿐이며 아폴로 11호의 엔진이 만들어지기도 훨씬 전인 1963년에 퇴사했기 때문이다.
또,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에는 가구 제작 업체에서 시간 근무를 하며 단 한 번도
과학이나 공학, 특히 우주공학과 관련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아폴로호의 로켓 엔진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전혀 관련이 없는 직종에 종사했던 것을 마치 NASA의 핵심 관계자인 것처럼 포장했을 뿐이다.
(1956년 2월 13일부터 senior technical writer, 1956년 9월 24일-1958년 9월 15일까지
service engineer, 1962년 10월 10일부터 publications analyst)
· 달착륙 조작설을 기반으로 미 정부가 화성착륙을 조작하며 전 세계를 기만하려 한다는
내용의, 불과 480만 달러의 예산으로 만든 영화 'Capricorn One'의 화성착륙 장면들이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모습과 현저하게 비슷할 정도로 정교하며, 제작자 폴 레저러스도
세트장에서 달착륙을 재창조하는 것에 자신 있다고 밝혔다.
- 먼저 영화 카프리콘 원은 1977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달착륙이 있던 1969년에는 당연히 CG 기술이
없었으므로(이에 대해 NASA가 비밀리에 CG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는 음모론자들을 위해,
컴퓨터 그래픽스의 약자인 CG가 영화에 도입된 것은 1982년 영화 'Tron'에서 였으며 이후
몇몇 영화들의 특수 효과에 사용되지만 당시 기술 수준은 미니어쳐를 사용한 장면보다도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폭발을 강조하는 장면에 쓰였으며 최초로 3차원 모델링/렌더링을
이용한 CG로만 만든 영화는 1995년 작 '토이 스토리'이다) 카프리콘 원처럼 당시 아폴로 11호도
미니어쳐를 중간마다 사용해야 했을 텐데 1977년 폴 레저러스가 연출한 화성착륙 장면은 사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과 비교하자면 극히 안쓰러울 지경이다.
(NASA는 당시 254억 달러의 예산이 있었다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앞서 강조했듯이 당시엔 CG 기술이 절대로
존재할 리 없으므로 만약 달착륙 영상이 스튜디오 작업의 결과물이라면 본질적으론 카프리콘 원에서와 같은 방식
(현대의 합성기술이 아닌 고전적인 방식의)을 사용했을 것이므로 예산부분은 이펙트나 사실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며, '아폴로호 스튜디오 설'이 얼마만큼 현실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될 것이다)
<NASA의 달착륙 영상과 약 10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 카프리콘 원이 같은 방법으로 촬영되었다고 주장하는 빌 케이싱
그의 주장대로라면 달에서 우주비행사가 찍은 저 지구의 모습은 CG 기술이 없으므로 정교한 사진이어야 한다>
· 달 표면에서 촬영한 달의 분화구와 위성에서 촬영한 Area 51의 분화구를 보면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극비 군사기지인 Area51에서 가짜 영상을 찍은 근거이며, 삼엄한 경계의 이유도 그 근거이다.
- 네바다주에 있는 Area51이 극비 군사기지로서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지만,
과연 그 이유가 달착륙 촬영세트의 보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Area51은 원폭 실험장이었던 곳과 인접한 장소를 선택해 건설되었다.
아마 원폭 실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장소였다는 것과
군용지로서 확보되고 있었던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Area51을 촬영한 위성 사진을 보면 달의 표면에 있는 분화구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원폭 실험이 지상에서 행해졌을 때에 원폭의 폭발에 의해 생긴 것으로
달 표면의 분화구와 지상에서 큰 에너지의 방출로 생긴 구멍은 과학적인 이유로 닮을 수밖에 없으며
실제 Area 51의 원폭 폭발에 의한 구멍들은 한정된 장소에 많지 않은 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당시 달착륙에서 찍은 달의 분화구로 보일만큼 Area 51이 커버할 수가 없다.
· 달에서 찍은 사진 중, 우주공간이 맑음에도 달의 검은 하늘에서 별들이 안 보인다.
- 당시 굉장히 밝은 달 표면에 카메라의 노출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밝은 달 표면을 깨끗하게 비치는 설정으로 했기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어두운 빛은 사진에 찍히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것은 비단 달 뿐만이 아니라 지구에서도 밤하늘을 촬영할 때
사진기의 노출 시간을 상당히 능숙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별빛은 너무
약해서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별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닌,
달 표면이나 우주비행사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당연히 그에 적합한
셔터 속도로 설정했기 때문에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 찍은 사진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진을 찍은 시간이
달의 낮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태양빛을 받아 빛나는 달의 표면에 노출을
맞추었기 때문이며, 만약 사진에 별이 보인다면 그것이 조작의 증거일 것이다.한마디로 아폴로호는 별을 찍기 위해 달을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공기가 없는 달에서 미국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Area 51 지역에서 가짜 영상을 만들 때 바람이 불었었기 때문이다.- 당시 달 표면에서 펄럭이는 모습의 성조기를 원했기에 기가 처지지
않도록 기의 윗부분에 고정봉을 이용해 깃발부분을 고정했으며, 아랫부분에는
줄을 넣어 약간 울게 함으로써 바람에 펄럭이는 듯 그럴듯한 모습을 표현한것이다.
그리고 성조기는 바람에 의해 펄럭이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의해 펄럭인다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일정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공기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라 진자운동에 의해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항상 정지상태의 사진을 증거로 이야기하는데
동영상으로 확인하면 이 주장이 얼마나 한심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조기가 펄럭이는 것이 스튜디오 촬영설의 근거가 된다면
어째서 성조기가 펄럭일 만한 바람에 또 다른 소품들(빌 케이싱의 주장대로라면
네바다주 Area 51의 흙이나 모래들)이 얌전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만약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면 어째서 대형 송풍기를 이용해 바람의 영향을
받게 될 다른 소품들의 위험성까지 감수하면서 센 바람을 일으켰느냐는 것이다.
혹시 달의 진공상태에서 마치 좌우로 펄럭이는 듯한 성조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차라리 성조기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다.
1967년 1월 27일 UN에서 체결된 '외계 우주조약(달을 포함해 외계 우주공간은 어떤 국가의 전유물도
될 수 없다)'으로 달에 성조기를 꽂는 것은 국제조약을 위반하는 행위였으며, NASA의 돈줄을 쥐고 있는
의회의 강력한 희망에 따라 성조기를 준비해 달에 꽂게 한 뒤 이러한 행위를 변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달에 성조기를 꽂은 것은 정복과 소유의 목적이 아닌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할 때 으레 그러하듯이 단순한
상징으로서 한 것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 각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성조기와 진공상태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성조기의 비교,
우측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성조기 윗부분에 고정봉을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기 프로인 'Mythbusters', 바람에 펄럭이는
성조기와 진공상태에서의 성조기의 차이에 대해 실험한 영상>
· 당시 강력한 로켓이 불을 뿜었을 달착륙선 아래에서
돌풍에 의해 생긴 구덩이가 없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것이 내가 찾은 달착륙 사기극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이다.- 분출흔적이 없는 것은 빌 케이싱이 달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달은 지구의 1/6의 중력과 공기 저항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작은 힘으로분출 세기가 조작되었고 지구와 비교해 우주궤도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속도도
1/4.7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분출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또, 달 표면의 토양은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고 착륙선의 하단부분은 달의 중력 때문에 1톤이 채 안되는 무게로,
혹시 달의 표면이 부드러울까 스로틀을 사용해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착지했기 때문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로 충격을 받지 않았으며 바로 이것이 지구와 다른 환경의 달에 착륙과 이륙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나사에서 밝힌 바로는 하강 시 1,500-2,000파운드 정도의, 모래먼지를 밀어내는 정도의 엔진 힘만이 필요하다고 함)<아폴로 15호의 달착륙 장면, 분사가스로 먼지들이 날리며 일순
뿌옇게 되지만 지구와 같은 분사자국이 생기지는 않는다>
· 그렇다면 달의 표면에 찍힌 Area 51에서나 쉽게 만들 수 있었던 발자국은 어떻게 된 것인가.
- 대기가 없는 달에는 흙이나 먼지, 화산재 같은 것들이 날리지 않은 체 가만히 쌓이게 되었고,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별다른 압력을 받지 않은 두꺼운 먼지층이라면 80kg이 넘는 우주복을
입고 있는 우주비행사가 충분하게 깊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
이러한 직접적인 압력과 착륙선의 분사로 인한 압력을 동일 선상에 놓고 생각하면 안 된다.
<수분이 없는 달에서 찍힌 선명한 발자국에 대해 Mythbusters에서 실험한 영상>
· 그렇다면 달착륙선의 다리들에 그 모래먼지들이 내려앉아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안 보인다.
- 지구라면 많은 모래먼지가 착륙선의 다리에 둘러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의 저항이 없는 달에서 대지의 움직임에 영향받는 모래먼지들이 지구에서처럼
자욱하게 뜬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구에서 촬영되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달은 진공이기 때문에 떠버린 모래먼지들은 급격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버리고,작은 먼지들 그 자체는 역시 진공이기 때문에 좀 더 멀리 날아갈 것이다.
착륙선 다리에 모두 내려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인 과학상식이 없기 때문이다.(한편, 모래나 먼지는 태양에서 날아오는 하전입자로 정전기와 같은 상태가 일어나
우주비행사들의 우주복에 상당수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월면차로 달의 표면을 주행하는 동안 모래먼지들이 지구에서보다 빨리 가라앉는 것을 알 수 있다>
· 약 140-150 데시벨의 아주 큰 소음을 내는 로켓엔진음이 당시 우주비행사의
통신 중 전혀 들리지 않으며, 마치 텅 빈 공간에 고요만이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착륙선이 단순히 철사에 의해 움직여진 영화소품이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주장은 역시 빌 케이싱이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소리는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것인데 달에는 공기가 없다.
때문에 당시 우주선 안에서 닐 암스트롱의 헬멧 안에 들어 있던 마이크를
통해 우주선 바깥의 로켓분사음이 들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 달착륙선이 달에서 이륙할 시 엔진 끝에서 배기가스도 없이 마치 케이블로 끌려 올라가는 것 같았다.- 앞서 말했듯이 달은 지구의 1/6의 중력과 로켓의 가속을 방해할 공기 저항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작은 힘으로 분출 세기가 조작됐고 때문에 지속적인 분출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고 착륙선의 연료였던 Hydrazine은 산화제와 섞을 시 연소가 일어나지 않은체 가스가 발생한다.
때문에 당연히 눈에는 보일 수가 없으며, 지구와 비교해 우주궤도에 오르는 데 필요한 속도가
1/4.7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스프링처럼 튕겨 올라가듯 이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만약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그의 말대로 케이블로 끌어 올리거나 크레인을 이용해서? 혹은 철사로 움직여서?
<아폴로 15호와 17호의 착륙선이 이륙하는 영상, 지구에서 새턴 V
로켓을 이용해 이륙시켜야 하지만 달에서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음모론자들 중에는 로켓 발사에는 거대한 발사대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발사대는 로켓이 넘어지지만 않게 발사 직전까지 지지해 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4개의 착륙다리로 유지되고 있는 착륙선에 발사대는 필요가 없다>
· 달에 가기 불과 몇 달 전, 일링톤 공군기지에서 있었던 달착륙선의 시험비행을 닐 암스트롱이 고전 끝에 실패하게 된다.
통제된 지구의 환경에서도 달착륙선이 그렇게 불안정하고 조종하기 어려웠는데 어떻게 전혀 다른 환경인 달에,
그것도 당시 소련에 뒤지던 미국이 과연 단 한 번의 시도로 안정된 착륙과 무사귀환을 성공할 수 있었을까.
- 달착륙은 갑자기 성공시킨 것이 아니라 소련에 우위를 빼앗기던 당시의 미국이 단계를 거쳐
짧은 시일 내에 혼신을 다해, 그리고 무모한 도박까지 시도하던 끝에 성공한 것이다.
1968년 10월 11-22일: 지구 궤도에서 유인 사령선 및 달 착륙선 궤도 비행을 하며
우주 비행을 최초로 텔레비전에 생방송으로 방송
1968년 12월 21-27일: 20시간에 걸쳐 달 궤도를 10회 선회 비행한 최초의 유인 우주선,
소련에 우위를 빼앗길 것 같다는 첩보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았던
아폴로 8호를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바로 실전투입시켜 달 궤도로 보내며,
역시 생방송으로 방송하며 무사귀환 하는 쾌거를 이룬다.
1969년 3월 3일-13일: 유인 우주선 아폴로 9호가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데 성공
1969년 5월 18일-26일: 유인 우주선 아폴로 10호가 달착륙선을 분리해 달 궤도를 선회한 후
다시 사령선과 도킹하며, 최초로 컬러텔레비전 방송으로 중계한다.
이렇듯 아폴로 10호로 이미 달착륙에 대한 확신을 얻은 NASA는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를 달로
보내기에 이르렀으며, 앞선 반론에서 설명했듯이 지구에 비한다면 달에서의 우주비행에는 많은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우주비행사들이 엄청난 노력과 반복된 훈련을
감내해내어 실제 착륙시도 시 일어난 예상외의 문제들도 순발력 있게 대처한 그들의 재능과
그보다 더 한 노력을 모두 깡그리 무시한 것을 전제로 한 가설일 뿐이다.
<아폴로 10호로 NASA는 달착륙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다>
· 우주비행사들의 움직임이 마치 1/6의 중력을 지니고 있는 달에서의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데이비드 S. 펄시에 따르면 영상의 속도를 두배로 빠르게 하면 지구에서 움직이는 것과 동일하게 보인다.
이는 월면차의 경우에도 해당되며 달착륙 영상이 지구에서 촬영되어 슬로우 화면으로 편집한 증거이다.
- 달의 1/6의 중력 때문에 달에서 물건이 낙하하려면 지구보다 약 2.45배의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2배속으로 재생시 당연히 지구상의 움직임을 닮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영상을 자세히 보면 부자연스러움과 낙하와 관련되지 않은 움직임에서의 이상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중력의 차이로 인해 계단을 밟는 등의 동작이 지구에서의 모습과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Mythbusters에서 실험한 영상>
· 달의 표면에서 우주복과 생명보조장치를 부착했음에도 우주비행사들이 찍은사진들은 아주 깨끗하고 정밀한 조준으로 찍혔으며, 한마디로 너무 완벽하다.
- 우주비행사들은 아폴로 계획의 선전을 위해 달 표면의 사진을 찍기 위한 충분한 연습을 하게 되는데,
따로 사진 기술자가 그들을 지도하며 훈련의 일환으로 달에 가지고 갈 카메라를 일상 속에서 지니고 다니며
그들이 가족이나 친구들을 피사체로 활용하게 하며 평상시에 매우 익숙하게 만든다.
또, 그들이 달에 가지고 가는 사진기는 통상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셔터 버튼은 수배 큰 네모진 형태를 하고 있어 간단히 누를 수 있고 렌즈에도 조작을 하기 쉽게돌기가 붙어 있으며 그 돌기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돌리는 것만으로 핀트를 맞추는 것이 가능하고,
한층 더 그 핀트를 맞출 단계는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망원의 4개와 대응하기 때문에
피사체와의 거리를 세세하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물론 그럼에도 노출이나 구도 등에서 실패한 사진이 많으며
단지 NASA에서 완벽하게 찍힌 사진만을 공개했을 뿐이다.
아마 빌 케이싱은 NASA의 이러한 간단한 홍보정책도 몰랐던 것 같다.
· 달에서 유일한 빛은 태양뿐인데 우주비행사들이 찍은 사진에는 인공조명을사용했기 때문에그림자들이 다른 방향으로 드리워져 있거나 달착륙선의
거대한 그림자 안에 있는 우주비행사의 온몸이 마치 조명을 받은 듯 밝게 보인다.
- 첫째, 지면의 요철에 따라(지면이 움푹 들어가 있거나 튀어 나와 있으면) 그림자는
지형의 영향을 받아 실제로 물체와 평행하고 있어도 외관상 평행하게 보이지 않는다
둘째, 그림자가 실제로 평행해 있어도 원근법 영향으로 외관상 평행하게 보이지 않는다.
달 표면은 아스팔트처럼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지 않고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경사면에 투영된
그림자는 당연히 방향이 변화하고 그 길이도 변화하는 게 당연하며 지구보다 훨씬 굴곡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맑은 날 밖으로 나가 자신의 주위 풍경을 보며 여러 가지 타입의 그림자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오히려 스튜디오에서 인공조명을 이용한다면 광원이 여러 개기 때문에 사진에서와 같은
그림자가 절대로 나올 수 없으며 그림자들끼리 서로 겹친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착륙선 그늘 속의 우주비행사가 밝게 나온 이유는 태양에 반사되어 반사판의 역할을 한
달 표면과, 대기와 물로 이루어져 있어 보름달보다도 수백 배 이상의 광량으로 보조광원 역할을 하는 지구,
(아마 달에선 태양의 밝기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달 표면과 우주비행사에 맞추어 노출을 조정한 카메라 때문이다.
또, 태양광이 달 표면의 모래에 반사되었기도 하며 지구에서도이러한 이유로 그늘진 부분이 까맣게만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밖에 사진의 선명함을 위해 NASA에서 후보정한 사진들도
상당수 존재하며 이는 NASA에서 이미 공개한 것이기도 하다.
<이 동영상으로 지형과 원근법의 영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Mythbusters에서 실험한 영상>
· 2개의 각기 다른 배경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달 표면의 바닥은 다른데 뒤의 언덕들이 같은 것을 볼 수 있다.이것은 한정된 장소로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촬영했다는 증거이다.
- 당연하다, 지구에서도 충분히 멀리 있는 산이라면 상당한 거리를
이동하지 않는 이상 바닥은 바뀌어도 배경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달은 지구보다 직경이 작으므로 지평선이 근처로 보일 뿐만 아니라
대기가 없어서 풍경 모든 것이 마치 근처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지형의 변화 이외에 특별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 달의 주변 배경을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생각해 판단하면 안 된다.
또, 같은 배경을 중심으로 이동해 찍힌 사진을 스튜디오 촬영의 증거로 삼는것은 잘못이다.
<사실 이같은 음모론은 FOX TV가 방영한 'Conspiracy Theory: Did We Land on the Moon?'의 작품이다
당시 우주비행사들이 동일한 지역을 기점으로 얼마 이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한 결과물을
마치 다른 시각 다른 장소에서 찍은 사진의 배경이 동일한 것으로 재포장된 것
이에 대해 'Apollo Lunar Surface Journal'의 편집장 에릭 M. 존스가 약 3분 간격을 두고 촬영된 것이라고
확인해주었으며 이같은 문제를 발견한 그의 조수 켄 글로버는 FOX Show측에 어필하기도 하였다>
<우주비행사들의 바로 뒤에 있는 듯한 약 3미터 높이 정도로 보이는 바위
하지만, 이는 지구보다 직경이 작아 지평선이 근처로 보이며 대기가 없는 달의 환경으로 인한 착시이며
동영상을 끝까지 보면 실제로는 바위의 크기가 3층 건물의 빌딩 정도의 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모든 달 사진기에 영구적으로 새겨져 있는 십자선 때문에 모든 사진엔 십자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십자선의 일부가 지워져 있는 사진이 있으므로 스튜디오 작업 후 기술적인 손질과 변조로 이미지를 처리한 것이다.
- 자세히 보면 화면의 휘도나 콘트라스트가 강한 부분만이 십자선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십자선을 기준으로 명암대비가 더 강하다면
그 부분의 십자선이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NASA가 자신들의 거짓말을 숨기고 감추기 위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암살했다.
- 수많은 전/현 NASA 직원 중 사망한 사람에게 빌 케이싱이 NASA 암살설을 갖다 붙인 뒤 한
주장일 뿐이며, NASA를 암살자 집단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달착륙 조작설 창조자인 빌 케이싱은 83세에 사망했다.
또 아폴로 계획에 약 25만명이 직접적인 참여를, 50만명이 간접적인 참여를 해 총 75만명의 사람들 중
비밀을 누설할 사람을 암살하고자 한다는 생각은 상식밖의 것이다.
·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던 현상으로, 지구 500마일 위에 존재하는 수천 마일의 두께로 둘러싸고 있는
강력한 방사선층인 '밴 앨런 방사선 벨트', 즉 '밴 앨런대' 때문에 인간은 절대로 달에 갈 수가 없다.
이 밴 알랜 방사선 벨트를 통과하면 방사선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죽을 수가 있다.
심지어 지구에서 X레이를 찍을 때에도 납으로 보호를 하며,
우주비행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피트 두께의 납이 필요하다.
- 거의 모든 달착륙 음모론자들이 믿고 있는 이야기로, 태양으로부터 온 입자가 지구의
자장에 잡혀 지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밴 앨런대는, 실제론 투과력이 매우 약해
알류미늄 외부 벽으로도 보호가 충분하고 우주복도 우주비행사를 보호하는데 충분하다.
아마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과 혼동을 하는 것 같은데 밴 앨런대는 알파선과 베타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베타선은 얇은 금속판, 그리고 알파선은 종이 한 장으로 막을 수가 있다.
또한 아폴로호가 이 방사선 지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나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마지막으로 밴 앨런대의 방사선이 가장 강한 장소를 통과할 때의
피폭량은 당일 사망하는 피폭량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빌 케이싱의 주장처럼 인간이 이 밴 알렌대 지역을 통과한 적이 결코 없다고 하지만, 사실 그전부터
소련의 달 탐사 위성에서 거북이나 곤충의 유충 등을 태운 뒤 무사귀환 시킨 적이 있다.
사실, 그들의 주장처럼 밴 앨런대 자기장이 사람에게 치명적이라면 북국의 사람들은 모두 즉사할 것이며
이러한 밴 앨런보다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무선 전파를 더욱 걱정해야 할 것이다.
· 달은 온도가 그늘에서는 영하 250도, 태양 아래에선 영상 250까지 올라가 인간에게는 너무 험한 곳이며,
우주비행사의 우주복으로는 강렬한 열과 방사선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해줄 수가 없다.
때문에 달착륙 후 귀환한 우주비행사들이 한 번도 심하게 아파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달에 가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당시 소련이 달에 사람을 보내려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작가이자 과학자인 랄프 리네는 NASA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복의 성능이 뛰어나다면
그 우주복을 입혀 'Three Mile Island(1979년 3월 28일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미들타운의 Three Mile Island에서
미국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 사상 최악의 방사능 사고-원자력 용해가발생 했었음)' 의 뜨거운 구덩이 안에
들어가 쓰레기를 치우게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 NASA의 주요 인사였다고 주장한 빌 케이싱이 우주복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우주복은 견고한 내열성과 신소재를 몇 겹이나 거듭해 만든 최첨단 방호복이기 때문에
실제 지구에서의 영상 100도에서도 무리 없이 장기간 우주비행사를 보호할 수 있으며,
더구나 대기가 없어 진공인 달에서는 마치 같은 온도의 뜨거운 물과 증기탕 속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등산용품 등에 쓰이는 진공 보온병을 보면 안에 들어 있는 뜨거운
액체의 열이 그대로 보온병의 겉면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우주비행사들은 온종일 태양 아래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간단위로
행동한 후 적절히 그늘에 들어가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
쉽게 말해 달 표면 온도는 160도까지 올라가지만, 진공이기 때문에 열전도가
일어나지 않고 카메라로의 열전도 역시 일어나지 않아 카메라 또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우주비행사가 달에 머무른 것은 온도가 심하게 높지 않은 시간대였다.
이렇게 보온병에도 쓰이는 단순한 원리를 빌 케이싱은 왜 모르고 있었을까?
또한, 과학자이자 작가로 소개된 랄프 리네도 사실은 정규교육이 아닌 독학공부를 한
'전문 음모론자'로 달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별이 찍히지 않았다는 앞서 다룬 기초적인
문제들 등을 제기하며 달착륙 조작설 음모론을 제기했던 대표적인 '비전문가'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에 NASA의 대변인은 달 표면의 방사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론은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 우주복을 설계했는가에 대한 무지와 미숙한 과학적 지식에서 초래한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 밖의 달착륙 조작설을 주장하는 증거들과 그에 대한 반박들
· 중력이 약한 달 표면에서 점프하면 하늘 높이 날아갈 텐데,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 우주복의 무게는 80kg에 다다르며, 이는 1/6의 중력인 달에서 약 13kg이다.
거기에 우주비행사의 무게를 합치면 달에서 점프하면 하늘로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가볍지 않다.
덧붙여 우주복의 구조상 관절 등을 구부리기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애초에 관절의 탄성을 이용해 높이 점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우주비행사의 등 쪽에 그들을 매단 와이어 같은 것이 보인다.
마치 달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와이어를 매단 체 촬영한 것이다.
- 와이어를 매단 것처럼 보이는 것은 통신용 안테나이다.
생명유지장치의 상단의 비상용 산소탱크 꼭대기에 바로 통신용의 VHF 안테나가 장착되어 있다.
<'넘어진 우주비행사가 와이어로 끌어올려 지고 있다'라는 증거가 된 문제의 영상
하지만, 사실 우주비행사는 왼손으로 동료를 지주 삼아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에서라면 두 손을 맞잡거나 부축해서 일으키겠지만, 달에서는 관절을 구부릴 수 없는
우주복과 1/6의 중력 때문에 훈련에서 했던 것처럼 땅을 박차며 튕기듯이 오르는 것이 정답이다>
· 달 표면을 찍은 사진에서 바위에 'C'라는 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사진이 있는데, 이것은 스튜디오 촬영 중 소품 배치 과정에서 실수한 흔적이다.
- 바위에 적혀 있는 이니셜 C만 초점이 다르므로 인화 시
먼지 등이 섞였거나 달착륙 조작설 옹호론자가 합성했거나.
물론 NASA가 애초 공개했던 원본 사진에서는 C가 보이지 않는다.
· 달 표면과 배경에 있는 산의 사이에 경계선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맥을 배경으로 한 세트를 이용해 촬영했기 때문에 이러한 흔적이 남은 것이다.
- 앞서 누누이 말했듯이 달은 지구의 1/4의 크기에 불과하며 대기도 없다.
때문에 지평선 역시 더 가까이에 있으므로 지구의 풍경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며,
사진에서처럼 배경의 산의 하부가 지평선 저편으로 숨어 버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 선장이 인류로는 처음으로 달 표면에 내려갈 때
아무도 없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내리는 순간을 뒤에서 촬영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영상 외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다른 각도에서 찍힌 닐 암스트롱이 보인다.
- 먼저 착륙선의 각부에 탑재된 카메라로 당시 닐 암스트롱의 모습을 찍은 것이며,
우측 사진은 음모론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로 쓰기 위해 다른 각도에서 찍힌 닐 암스트롱으로 주장하지만,
사실은 닐 암스트롱이 먼저 내려와 또 다른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이 내려오는 것을 찍은 것이다.
· 영상 중 우주비행사 2명의 뒷모습을 쫓는 장면이 찍힌 씬이 있다.
우주비행사 2명만이 달 표면에 내렸는데 어째서 이러한 영상이 찍힐 수 있었는가.
- 월면차에 탑재된 원격 조작의 TV 카메라가 촬영한 것이다.
지구에서 조작을 하는데 우주비행사의 움직임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전파의 왕복에 2.6초가 걸리기 때문이다.
· 아폴로 17호 우주비행사의 헬멧 바이저에 비친 다른 우주비행사의
모습을 확대해보면 생명유지장치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 헬멧 바이저에 비친 우주비행사의 모습만 보면 마치 생명유지 장치인 'PLSS' 없이 있는 것 같지만,
우주비행사의 그림자를 보면 온전히 생명유지장치를 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이미지 확대과정에서 일어난 이미지 일그러짐으로 인한 착시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달에 다녀온 아폴로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달에 다녀온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 아폴로의 우주비행사 중 달에 다녀온 체험담에 대해 저술한 이로는 대표적으로 11호의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15호의 데이비드 스콧, 17호의 유진 서넌이 있으며 그들의 저서는 번역되어 각국에 출판되었다.
또 NASA가 외계인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을 확장시키는데 일조한 우주비행사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달에 다녀오면서 초능력이 생겼다고 믿어 심리와 의식의 본질을 연구한다는 초능력 연구소의
설립이사가 되는 14호의 에드가 미첼, 복음전파 기관인 고공비행재단을 설립해 노아의 방주를 찾는 15호의
제임스 어윈이 함께 달 탐사를 한 동료의 부정에도 달과 외계인이 관련해있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퍼뜨렸다.
참고로 최초로 달착륙을 했던 11호의 버즈 올드린은 특히 음모론자들에 의해 많은 괴롭힘을 받았는데,
2007년 8월 15일 출연한 'The Howard Stren Show'에서 UFO 목격에 대한 질문에 '무언가 외계인이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전혀 없었으며, 그런 목격담은 다른 것과 혼동한 것이 99.9% 이다'
라고 대답했으나, 한 과학채널에 의해 그가 달에서 미확인 물체를 보았다는 언급을 했다고 밝히며
세계각국의 뉴스에 올드린이 달에서 UFO를 보았다는 기사가 나가자, 올드린은 자신의 말이 전후관계를
무시하고 받아들여졌으며 미확인 물체를 본 적이 없으므로 정정보도를 요구하나 거절당하고 만다.
(그 과학채널은 사이언스 채널로, 당시 인터뷰에서 올드린이 우주선에서 로켓이 분리될 때 패널이 떨어져 나온
것을 보았다고 이야기 한 것을 마치 올드린이 우주에서 UFO를 목격했다는 식으로 편집해 방영하여 이슈를 만듬)
또, 2002년 9월에는 달착륙 조작설 음모론의 열렬한 지지자인 영화제작자 'Bart Sibrel'이 베버리 힐스의 바깥쪽
캘리포니아 호텔에 머문 올드린과 그의 의붓딸에게 접근해 '당신은 달에 간 적이 없음에도 달 위를 걸었다고
말한 사람이다', '겁쟁이, 거짓말쟁이, 도둑놈'이라 비난하다 올드린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당한 일이 생겼다.
음모론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증거로 올드린이 찔리는 것이 있어 폭행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당시 베버리 힐스 경찰서와 검사들은 목격자들이 Sibrel이 먼저 신체접촉을
일으킨 후 그를 비난하다 폭행당했다고 증언함에 따라 올드린은 소송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 기독교 근본주의의 일파인 'Flat Earth Society'의 대표였던 찰스 존슨은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아서 C. 클라크의 각본으로 헐리우드 제작진들이 애리조나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먼저 Flat Earth Society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으며, 물론 아서 C. 클라크는 스스로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당시, 그가 기자 회견에서 아폴로 계획의 날조를 폭로한 적이 있다.
- 2005년 4월 1일의 만우절 기사로 실렸던 것이 달 음모론자들에 의해 여러 버전으로 퍼지게 되었다.
사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에 성공했을 당시의 소련은, 달착륙을 포기하고 로봇 탐사선 루나호를 이용해
무인 탐사 쪽에 주력하면서 한편으론 우주 정거장에 올인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달착륙에 의혹 제기를 한 적이 없다.
· 당시 착륙선과 사령선의 성능은 자동차나 심지어 1980년대 가정용 게임기보다도 떨어지는데,
40년도 전에 그러한 기술력으로 달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 음모론자들의 주된 주장 중 하나로, 이는 스스의 좁은 시각에서 생각한 주장일 뿐이다.
당시 궤도를 사전에 지상의 컴퓨터로 계산한 후에 아폴로호의 컴퓨터가 주로 데이터를
받아 궤도를 보정하는 식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고급 기능은 필요하지 않았으며,
현재의 컴퓨터와 같이 복잡한 데이터 처리가 아닌 궤도 보정을 위한 수치 처리를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성능이 낮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안정성 문제 때문에
오히려 지금도 구형 컴퓨터가 탑재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 컴퓨터와 IT 기술이 발전한 현재는 스마트 폰이나 화려한 CG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당시 인류문명의 선봉국가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기였으며, 마치 나날이 발전하는 지금의
컴퓨터 관련 기술들처럼 당시에 미국과 소련의 경쟁으로 로켓공학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며 휴대폰도 없던 시대에(전화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때에, 실제로
휴대폰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 불편한 전화기를 특정 계통을 제외하곤 누가 사용할까라고
생각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로 사람을 태운 우주선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 기술이 인간을 달에 보낸 것이 아니다.
<독일 최고의 로켓 과학자였던 폰 브라운은 1955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1958년 NASA의
마셜 우주 비행 센터의 책임자로 임명되며 아폴로 11호의 추진 기관인 새턴V를 만든 장본인이다
사실 폰 브라운은 당시 독일의 군국주의는 그에게 다른 것을 원하여 젊은 시절부터
'내 로켓을 달에 보내겠다'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시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 그렇다면, 미국이 정말 달착륙에 성공했다면 왜 이후 달에 가지 않는가?
- 먼저 NASA는 냉전 시대 당시 소련과 대항하기 위해 무모한 행위들도 정당화시키거나
막대한 예산인 254억 달러(현재 가치로 약 140조 원)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아폴로 11호 이후에도 12호, 14호(13호는 사령선의 고장으로 달 궤도를 선회 후 귀환) 최초로 월면차를
사용한 15호, 16호, 그리고 처음으로 달의 고지대에 착륙해 무려 75시간 동안 달 표면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월면차를 이용해 30.5km를 이동하였는데, 이후 소련의 달착륙 포기에 따른 경쟁자 구도가 사라지며
어마어마한 예산이 문제로 대두한 아폴로호 계획이 중단되기에 이르렀고,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10년대에 다시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컨스텔레이션 계획'을 세우지만, 후임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러 이러한 연구의 축을 장기적인 기술개발로 옮기기 위해 중지되었다.
만약 음모론자들의 말처럼 40년 전에 달에 갔는데 어째서 지금은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는 당시의
정세와 변화한 현재 상황, 그리고 목표치를 달성한 달 탐사 계획에 대해 무지하다는 증거가 될 뿐이며,
마치 '고대에 중국이 만리장성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왜 만들지 않느냐,
피라미드처럼 외계인이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냐'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지금 또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는 것은, 본래 20호까지 준비되어 있던
아폴로계획에 여론의 관심이 줄어들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넣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며,
달을 탐사할 유인 우주선이 현재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미국 아폴로 계획과 관련한 테이프 원본 13,000여개가
없어졌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이는 NASA의 은폐공작이다.
- 은폐공작이 아닌 관리허술로 인해 분실되거나 재활용 때문에 지워진 45개의 테이프를 제외하고는
이후 10년의 노력 끝에 호주에서 발견되어 원판 필름과 세계 각지에 있던 4개의 복사본을 이용해
디지털 작업으로 더욱 선명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 NASA가 아닌 호주가 아폴로호의 달착륙 영상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 아폴로 11호의 TV중계를 위해서는, 당시 지구의 반대 측에 있던 미국에는 전파가 원활하게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감도가 양호했던 호주의 파크스 천문대에 중계임무가 이양되었다.
· 우주비행사들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NASA의 기밀 원본 영상이 유출되었으며,
특히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자신도 인정하였다.
<닐 암스트롱이 스튜디오에서 달에 첫발을 디디는 장면을 촬영 중 생긴 조명사고 장면>
- 먼저 첫 번째 영상은 ID 'rudbrps'가 크로마키 기법을 이용해 합성한 영상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이른바 'social experiment'를 한 것이라 고백하였다.
그리고 닐 암스트롱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다 조명사고가 난 영상이 유출되었으며
그 자신도 이를 인정했다는 주장은 물론 모두 음모론자들이 지어낸 것이며, 해당 영상도
전문 풍자그룹인 'Viral Factory'에서 2002년 'Adam Stewart'가 달착륙 조작설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패러디한, 한마디로 그들을 풍자하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달착륙 조작설을 위해 사진 등을 조작하던 음모론자들이
이마저 가공된 이야기를 통해 널리 유포시키며 말을 잃게 하였다.
인간이 달에 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
- 달착륙 조작설 음모론의 가장 큰 증거였던 '펄럭이는 성조기'는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이 정말로 달에 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
당시 우주비행사들이 성조기를 설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조기가 대기가 없는
진공상태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으며 CG가 없던 시절 이러한 연출을 하려면
세트장의 공기를 몽땅 빼서 진공상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분 30초부터 마치 성조기의 전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처럼 보이며 음모론자들의 좋은 증거가 되기도 하였지만, 이는 사실 우주비행사가
깃대 자체를 움직였기 때문에 기 전체가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 아폴로 15호의 선장 데이비드 스콧이 달에서 한 중력장 아래에서의 실험
매의 날개 깃털과 자신의 지질 조사용 망치를 달 표면에서 동시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통해 중력장(중력이 영향을 미치는 공간) 아래에서는
물체가 낙하하는 비율은 질량에 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 이 영상은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가 월면차에 탑승해 달 표면을 주행하고 있는 영상이다.
만약 스튜디오에서 이러한 영상을 연출하려면 엄청나게 넓은 세트장을 마치 태양처럼 강력하게
비출수 있는 하나의 라이트(왜냐하면 여러개의 조명을 사용하면 그림자의 겹침 등으로 금방 들통나므로),
그리고 빌 케이싱의 주장처럼 네바다주 Area 51이나 밤중의 사막에서 촬영한다면 단일의 조명으로
아득한 곳까지 월면차의 주변과 마찬가지로 균일하게 비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아폴로 11호가 당시 달 표면에 설치한 레이저 반사경을 이용해 미국의 맥노달드 천문대와
프랑스의 그라스 천문대 등에서 달과 지구의 거리를 측정하고 있으며, 우리가 달이 서서히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도 달 표면에 있는 레이저 반사경과 지구의 측정기를 통해
지속적인 측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2000년대에 들어서선 지구의 측정기의 발전으로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도로 관측이 가능해지며 중령상수의 정밀측정 등 다양한 연구에 응용되고 있다.
(당시 달에 두고 온 지진계로 달 지진이 1977년까지 관측되기도 하였다)
- 2008년 5월 일본의 달 탐사 위성인 카구야의 지형 카메라가 얻은 데이터로부터 만들어진
입체 지도의 지형이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가 촬영했던 달 표면의 풍경 사진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 만약 아폴로호가 달에 가지 않았다면 탐사장비와 월면차, 그리고 우주비행사 개인의 기념품을 두고 온 것을
공개적으로 발표할 이유가 없으며, 실제로 달 관측위성인 LRO가 이러한 잔존물 촬영에 성공하고 있다.
- 수만 명의 구경꾼들 사이에서 발사된 아폴로호들, 그리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갔을때
지구의 반대 측에 있던 미국은, 자국의 골드 스톤 기지에서 신호를 수신하다 호주의 파크스
천문대보다 감도가 떨어지자 더욱 선명한 영상을 위해 협조를 요청 후 중계 임무를 이양하였다.
때문에 당시 달의 영상들은 최초로 호주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그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아폴로호의
전파를 추적하기 위한 추적 스테이션이 배치되어 있었고 이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소련과 세계 각지의
수많은 아마추어 천문학자와 무선 통신사들이 아폴로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NASA의 대변인이 밝힌 것과 같이 당시 직간접적으로 75만 명의 사람들이 아폴로 계획에
관여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전 NASA 관계자', '달착륙 사기극 조사원', '과학자', '천문학자'
라고 밝히는 작가나 아마추어(사실 아마추어로 표현하는 것도 웃기지만) 천문학자 등을 제외하면
간혹 달착륙에 대해 의문점을 제시하는 소수의 과학자나 천문학자들을 포함해 '인간은 달에
가지 않았다' 라고 주장하는 공인된 과학자나 천문학자들은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에서 가져온 달의 암석인 월석, 월석을 얻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달에서 충돌로 생겨난 파편이 지구로 온 월운석(2006년까지 30kg, 90여개)
둘째, 소비에트 연방의 루나 계획에서 얻은 326g의 월석
셋째, 아폴로 계획에서 우주비행사가 직접 채취해 지구로 가지고 온 382kg, 2,415개의 월석
이것만 보더라도 인간이 달에 갔다 왔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음모론자들의 월석을 NASA에서 관리하며 공개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다르게
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40여 년간의 걸친 지속적인 연구에도
이러한 월석들이 종전의 월석들과 달의 추정 연령 등의 결과에서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다.
'달착륙 조작설 음모론의 진실: 인간은 정말 달에 갔을까?' 결론
달착륙 조작설을 처음 주장했던 빌 케이싱, 세계 각지에서 미스터리 붐이 일어나며
더불어 관련 출판물들도 베스트 셀러가 되던 1970-80년, 그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저서를
1974년에 출판하려 하지만 그의 황당한 주장이 담긴 책을 꺼리던 출판사들 때문에
자비로 출판하는 계열의 출판사를 통해 발행되어 고작 3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합니다.
(이러한 사실도 빌 케이싱의 주장이기 때문에 실제 판매고는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함)
한편, 달착륙 조작설 음모론은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치며 관련 저서를 출판하는 작가도 있었지만
기초적인 과학적 지식과 관련되어 많은 오류가 있는 달착륙 조작설 때문에 모두 혹평을 받거나
가장 어이없는 책을 꼽는 '일본 톤데모혼' 대상을 수상하는 등의 불명예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번역과정이나 자세하지 않은 정보들 때문에 국내에도 이러한 음모론들이 관심을 받게 되며
'과학동아'를 비롯한 많은 과학 잡지나 여러 출간물을 통해 음모론자와 반박자의 칼럼들이
실리면서 많은 인기를 끌게 되지만, 실상 미국의 경우 마니아적인 미스터리로 치부하며,
'미국 국민의 6%만이 달착륙 조작설을 믿는다'라는 결과가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수치도 많다고 할 수 있으며 폭스TV에서 밝혔던 수치는 과장이 심한 것입니다)
달착륙 조작설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FOX TV사의 당시 프로그램도
1995년 로스웰 외계인 필름을 주제로 세계각지에 방영하며 엄청난 재미를 보았던
FOX TV사가 내놓은 또 다른 '미스터리 다큐멘터리'이며, 로스웰 때처럼 달착륙 조작설에
긍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의도를 지닌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닐 암스트롱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가 인류 최초로 달 위를 걸은 후 사다리를 타고 착륙선에 오르면서 'Good Luck, Mr. Gorsky'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는데 NASA의 직원들은 이 말이 당시 경쟁국이었던 소련의 상대 우주비행사에게
하는 말로 알았지만, 확인결과 소련은 물론 미국의 우주비행사 중에서도 고르스키라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며 닐 암스트롱에게 'Good Luck, Mr. Gorsky'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도
그때마다 그는 항상 미소만 지을 뿐이었는데, 1995년 7월 5일 플로리다 주 탐파만에서 연설을 마친 후
받은 기자의 해당 질문에 고르스키가 이미 타계했기 때문에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며 대답을 해주었다
이야기인즉슨, 어린 시절 친구와 뒷마당에서 야구를 하다 친구가 친 야구공을 줍기 위해
이웃집 침실 창문 앞으로 향한 어린 닐 암스트롱은 당시 이웃이었던 고르스키씨 내외의 말싸움을 듣게 된다
그것은 부인이 남편에게 하는 말로, '오랄섹스라! 오랄섹스를 하고 싶다고?! 옆집 애가 달 위를 걸으면 그때 해주지!'
흥미로운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며 아메리칸 조크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인간은 정말 달에 갔을까요?
많은 과학적 증거대로 인류는 1969년 7월 20일 달에 착륙하여 약 6시간 반 후인
1969년 7월 21일 02:56 UTC(미 동부 시간 오전 10시 56분)에 첫발을 남긴것일까요?
아니면 당시의 급박한 정세 때문에 NASA에서 다시없을 인류 최대의 사기극을 자행한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스터리에 심취하면 곧 종교가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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