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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디 앨런에 대한 이야기 - 여자친구의 딸과 결혼을 했다고?...
    기묘한 이야기 2019. 9. 2. 03:25

     

    감독상 후보 6번, 각본상 후보 13번, 남우 주연상 후보 1번,

    작품상 후보 2번, 그리고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예술감독'.

     

    1935년 12월 1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우디 앨런

    (본명은 앨런 스튜어트 코닉스버그)은 카바레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대본을

    써주며 명성을 얻다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서면서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리고 1969년엔 기념비적인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로 정식데뷔하면서,

    유대인인 자신의 심리와 내부의 콤플렉스들을 유머의 소재로 사용하며

    무성영화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유럽 예술영화의 실험적인 스타일까지

    다양하게 넘나들며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13번이나

    (그 중 '한나와 그 자매들'로 1번 수상) 오르는 예술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쌓게 됩니다.

     

    한편, 우디 앨런이 45세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한

    '위대한 갯츠비'의 주연 여배우 미아 패로우와 연인이 되기에 이릅니다.

     

    그녀는 존 패로우 감독과 배우 모린 오설리반 사이에서 태어난 우디 앨런보다 10살 연하의

    미국태생 여배우였으며, 아역배우로 배우생활을 시작하며 21살 때 자신보다 21살 연상의

    배우 프랭크 시나트라와, 그리고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앙드레 프레빈과의 짧은 결혼생활 후

    우디 앨런과 관계를 맺게 되지만 앨런의 거부로 결혼은 하지 않은 체 연인관계로 지내게 됩니다.

     

     

     

    첫 남편이었던 프랭크 시나트라로부터 배우를 그만두라는 말에 의견충돌로 말미암아

    이혼을 했던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이었던 앙드레 프레빈이 바람을 피우면서 두 번째

    이혼으로 말미암아 30대의 젊은 나이에 그녀는 두 번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후 12년간 우디 앨런과 연인으로 지내며 그들 사이의 친자식인 5살 남아 로난과 입양자식인

    7살 난 딸 딜런, 15살난 아들 모제스, 그리고 전남편들 사이에서의 친자식과 입양자식을 포함한

    총 아홉 명의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기르던 그녀는 1993년에 그녀 인생 최고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1992년 앨런의 아파트를 방문한 그녀는 벽난로 선반 위에서 자신과 전남편이었던

    앙드레 프레빈 사이의 한국계 입양아였던 장녀 순이 프레빈(Soon-Yi Previn)의 누드사진을

    발견하면서 다음 해 뉴욕 맨해튼의 누추한 법정에서 앨런과 진실공방을 하게 됩니다.

     

    앨런은 법정에서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뉴욕 닉스의 농구시합에 순이를 데려갔던 날부터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나는 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일에 논리는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당시 대학 신입생이었던 연인의 딸 순이와의 불륜을

    두 명의 성인이 서로 동의하여 이루어진 사적인 일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한편, 가슴 속 깊이 상처를 입음과 동시에 단짝과 딸을 동시에 잃은

    미아 패로우는, 앨런을 '비도덕적인 바람둥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행동을 '정신적인 근친상간'이라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그녀는 법정에서 자신과 앨런 사이의 친자식과 입양자식의 '아동보호'를 요구했고,

    앨런 역시 복수심에 가득 찬 그녀로부터 자신의 아이들을 떼어놓을 것이며 대신

    그녀에게 자유로운 방문은 허용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이러한 골자의 전대미문 스캔들의 법정소송은 진창길을 향하며 결국,

    순이와의 불륜을 시인한 직후 코네티컷의 브리지워터에 있는 패로우의

    집을 방문한 앨런이 자신의 입양녀인 딜런에게 성적 학대를 했다는

    증언을 담은 '일곱 살 난 딜런의 증언테이프'가 나오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우디 앨런이 미아 패로우와 사귀고 있을 당시의 사진>

     

    하지만, 이러한 미아 패로우의 주장은 예일-뉴헤이븐 병원 전문가팀의 조사에 의해

    앨런의 행동이 지나치게 친밀했다는 점은 인정하나 딜런에게 아무런 성적 학대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자기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그러한 이야기를 꾸며냈거나 패로우가 시킨 대로

    아무 뜻도 모르고 따라 했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밝히며 코네티컷의 검사들에

    의해 앨런의 성적 학대를 범죄 죄목에 보태는 것을 거부당하게 됩니다.

     

    한편, 이러한 패로우의 주장에 앨런은 그녀가 자신에게 '당신이 내 딸을

    데려갔으니까, 나는 당신의 딸을 데려갈 거에요'라고 말했다며 증언했으며

    그의 변호사 엘컨 아브라모비츠는 그녀가 단지 복수를 위해 아이들을

    병사들과 인질로 이용한다며 비난하자 끝내 패로우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또, 앨런은 자신과 패로우의 연인관계가 패로우가 자신과의 친자식인 로난을 낳은 직후

    끝났음에도 둘은 여전히 절친한 친구로 남아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그녀의 집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선물과 잦은 식사시간, 패로우와의 아이들 양육을 위한 의논,

    그리고 심지어 부모 역할을 위해 딜런이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어 주기 위해 패로우의

    아파트까지 전력질주 했던 일을 묘사하며 아이들의 양육 권리를 주장하기에 이르지만, 실제론

    그가 아이들을 가르친 가정교사들 중 단 한 명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며 아이들의 일상에서

    더욱 중요한 세부사항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드러나게 됩니다.

    (당시 패로우는 센트럴파크 맞은 편 웨스트사이드 북부에, 그리고 앨런은 맨해튼 이스트사이드에 살았습니다)

     

     

    한편, 패로우의 변호사 엘리너 앨터는 최종 변론을 하는 동안 앨런을 '도덕의 경계선을 모르는 인간',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사람', '아이들에게 성적인 혼란을 일으키는 위협적인 역할 모델'이라고

    주장했으며 지나치게 뜨거워진 공판의 분위기 때문에 어느 쪽도 아이들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엘리어트 윌크 판사는, 민감한 증언들에 대해서는 언론 관계자들의 출입을 금하고

    순이의 나체 사진은 그녀의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안전하게 보관했으며 증언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한 달 동안 심의 과정을 거쳐 세 아이를 보호할 독점적 권리를 패로우에게 주게 됩니다.

     

    이에 대해 윌크 판사는 판결 이유문에 '앨런 씨는 모제와 딜런, 로난에 대해 부모로서

    적절한 보호자 자격을 얻을 만한 자질을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으며 그가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을 그 모든 식사와 선물들, 아이의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준 동화책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상해 줄 것이 없으며, 그 이유는 그가 아이들의 인생에서 정말 의미 있는

    본보기 역할이나 보살핌을 제공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이 공판의 결말을 지은 것은 바로 순이와의 불륜이었으며,

    판사는 앨런이 그들의 큰딸과 동침한 것이야말로 앨런의 부모로서의

    무능을 극대화하여 보여 준 것이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판사는 딜런에 대한 성적 학대에 대해 '증거가 결정적이지 않다'라고

    밝혔지만, 딸에 대한 앨런의 행위는 '대체로 부적절' 하다고 규정지었으며 세 명의

    아이들을 방문할 앨런의 자격을 엄청나게 삭감하는 것으로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당시 세 아이의 맏이인 15세의 모제스에게는 앨런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혼자 결정할

    권한을 줬지만 모제스는 앨런과 아무것도 함께 하고 싶지 않다고 밝히며 법정

    밖으로 의기양양하게 걸어나갈 사람을 자신의 엄마로 만들어 주며, '순이 스캔들'로

    불리던 이 희대의 스캔들은 윌크 판사의 '패로우 양이 아이들을 책임감 있게 키우는 데

    있어서 관심 부족이라는 비난을 받는다면, 그 유일한 이유는 앨런 씨와 계속해서 관계를

    맺어온 점으로 보인다'라는 말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

     

    <법정화가 마릴린 처치에 의하면 '우디 앨런은 증인석에 섰을 때에만 생기를 띠었으며,

    무대 위에 선 것과 같은 그는 박해받는 사람의 표정을 지었고 미아 패로우는

    그의 목을 조르러 달려나가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눈치였다고 전한다>

     

     

    한편, 법정진술 당시 판사에게 '순이의 나이는 패로우가 첫 결혼을 했을 때의

    나이와 같다' 라는 말을 남기고 후에 정식으로 순이와 교제를 하며 '꼭 최고라고

    하지 않는다 해도 지금까지 경험해본 연애 가운데 최고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라는 말을 남긴 우디 앨런은, 1997년 서른여섯 살 연하의 순이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딸을 유혹한 파렴치한'이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2005년 우디 앨런과 그의 아내 순이, 그리고 큰딸 배쳇과

    둘째딸 맨지와 함께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우디 앨런 동상에서

    우디 앨런과 순이는 중국 태생의 베쳇(현재 12살)과 텍사스 태생의 맨지(현재 11살)를 입양했으며 

    지금까지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미아 패로우는 맹인, 뇌성마비와 같은 장애인을 입양하며 친자식과 순이를 포함해

    13명의 아이를 헌신적으로 길러 내고 10년 넘게 현재까지도 유엔아동기금에서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분쟁지역의 희생자들을 만나고 인도주의 활동가의 삶을 자처함으로써

    헐리우드의 배우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기에 이릅니다.

     

    <우디 앨런과의 유일한 친자식인 로난 패로우와 함께>

     

     

     '순이 스캔들'에 대해 결국, 완전하게 남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우에 대해 과연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요?

     

    이 이야기의 끝은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우 사이의 유일한

    친자식이었던 로난 패로우의 말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는 제 아버지이고 제 누나와 결혼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 그의 아들이자 처남이 됩니다.

    이것은 너무한 불륜이며 저는 그를 볼 수가 없습니다.

    제 아버지와 부자지간의 연을 맺으면서 도덕적으로 일관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저희 모든 입양 자녀와 함께 살았으므로 그들은 제 가족입니다.

    순이를 제 누나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입양아에 대한 모독입니다."

     

     

    (1987년생인 로난 패로우는 11세에 Bard College at Simon's Rock에 최연소 입학해 A.A.

    학위를 딴 후 뉴욕 Bard College in Annandale-on-Hudson으로 전학해 생물학을 배우다

    정치학과 철학 졸업 논문으로 15세에 학교 역사상 최연소로 졸업해 16세에 예일 대학

    로스쿨 입학 허가를 받으나, 2006년 가을까지 전 미국 UN 대사 리차드 홀브룩의

    특별 보좌관 임무와 유니세프 유엔아동기금에서 일하기 위해 입학을 보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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